현대카드에 ‘임원 장터’ 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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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현대카드·현대캐피탈에 ‘장터’가 섰다. 장소는 서울 여의도 본사 건물 10층 컨벤션홀이다. 그런데 일반 장터와는 좀 다르다. 물건을 사고팔지 않는다. 대신 임원들이 모여 생각과 정보를 교환하고, 감정을 공유한다. ‘지식 장터’인 셈이다.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본사 10층 컨벤션홀에서 임원 50여 명이 합동 근무를 하면서 업무를 협의하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장터는 매월 한 번 목요일 오후에 열린다. 50여 명의 임원은 사무실을 비우고, 노트북 컴퓨터와 간단한 서류만 챙겨 컨벤션홀에서 한나절 업무를 본다. 아이디어는 정태영 사장이 냈다. 사장과 중역들이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일본 혼다 사례를 참고했다. 합동 사무실의 이름을 ‘마켓 플레이스(Market Place·장터)’라고 붙였다. 처음 장터가 선 지난달 23일엔 어색한 분위기였다. 임원들끼리 “살다 보니 별걸 다 한다”는 얘기가 오갔다. 일렬로 놓인 책상을 앞에 두고 어디에 앉을지 몰라 서성대기도 했다. 난감해하던 이들이 옆자리 임원과 얘기를 시작했다. “뭘 해야 하지”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레 업무 얘기로 이어졌다. 한쪽에선 신상품 출시와 관련된 즉석 회의가 열렸다.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불려왔다. 정 사장은 방문객도 이곳에서 만났다.

사람이 북적거리자 장터엔 활기가 돌았다. 회의와 의견 교환은 꼬리를 물었다. e-메일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던 뉘앙스가 살아났다. 정색하고 회의를 열기엔 작고, 그렇다고 혼자 풀기엔 큰 문제들을 토론했다. 얼굴을 맞대는 ‘아날로그의 힘’이었다. 이 회사는 결재를 모두 온라인으로 할 만큼 디지털 시스템이 일상화돼 있다. 같은 건물에 있어도 몇 달간 마주칠 일이 없을 때도 있다. 마켓 플레이스엔 ‘아날로그 감성을 잊어선 안 된다’는 정 사장의 철학이 녹아 있다.

장터가 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7월부터 온라인 인력 시장인 ‘커리어 마켓(Career Market)’도 운영 중이다. 처음엔 잘 안 됐다. 직원들은 부서장 눈치를 보느라 희망 부서를 올리지 못했고, 부서장은 유능한 직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 사장은 “진정한 복지는 회사 내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지금은 이 회사 인사의 80%가 커리어 마켓을 통해 이뤄진다. 정 사장은 “70%의 확신과 전략이 있다면 해보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며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곧 핵심 역량이자 과제”라고 강조해 왔다. 두 번째 마켓 플레이스는 14일 열린다. 지난달이 시범 장터였다면 이번부터가 본 장터다. 합동 근무 실험은 진행형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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