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MRI는 애물단지…환자 줄고, 리스료에 울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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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대에 수백만달러를 호가하는 고가 의료장비가 병원업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 란 것은 이젠 옛말. 병.의원의 경영악화를 가중시키는 주범이 된 것은 물론 과잉진료마저 부추기고 있다.

의료보험수가가 적용되지 않아 '부르는 게 값' 이어서 병원업계의 효자로 꼽히던 이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것은 최근 몰아닥친 국제통화기금 (IMF) 시대 고환율로 인해 대여료가 두배 가까이 폭등한 탓. 1회 검사료만 45만원에 달해 들여놓은 지 2년이면 기계값을 뽑는다는 자기공명영상장치 (MRI) 의 수입가격은 현찰가로 대당 1백만~2백50만달러. 병원업계는 현찰보다 대개 5년간 월 5만달러 내외의 대여료 지불을 조건으로 들여놓고 있어 현재 이들 병.의원이 입는 환차손만 매달 4천만원에 달한다는 것. 대당 3백50만달러가 넘어 국내 최고가 의료장비로 꼽히는 감마나이프와 양전자단층방출촬영장치 (PET) 도 사정은 마찬가지. 뇌종양 치료에 쓰이는 감마나이프는 1회 사용료만 6백만원선. 머리와 가슴부위 진단용으로 쓰이는 PET도 1회 검사비만 80만~90만원이나 한다.

이들 기계 역시 대개 5년간 월 7만달러 내외의 대여료를 내고 들여놓은지라 병.의원이 입는 환차손은 천문학적인 숫자가 되는 셈. 이 때문에 의정부 S병원처럼 MRI를 팔려고 내놓거나 서울영등포 Y병원처럼 MRI검사료를 20%까지 내린 병.의원마저 속출하고 있다.

혜화방사선과 추연명 원장은 "불황으로 환자들마저 고가검사를 꺼려해 하루평균 검사횟수가 10여건에서 4~5건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고 한숨 쉰다.

고가 의료장비가 골칫덩이가 된 데는 '황금알…' 에 대한 기대로 병.의원들이 앞뒤 재보지 않은 채 무작정 들여놓은 것도 한 원인. 당초 MRI는 대학병원과 같은 3차 의료기관에서만 설치가능했으나 행정쇄신위원회의 고가장비 승인절차규제완화조치의 적용을 받아 94년 4백병상 이상 병원, 97년엔 2백병상 이상 병원이나 전문의 2인 이상을 둔 의원급으로까지 하향 조정됐다.

지금까지 보건복지부로부터 승인받은 2백67대의 MRI중 70%에 해당하는 1백88대가 빗장이 열린 94년 이후 승인받아 IMF 환차손을 더욱 부채질한 셈이 됐다.

감마나이프나 PET의 경우 고가장비 승인심사대상에서 처음부터 완전히 제외돼 자유로운 설치가 가능해 과잉도입이 부추겨진 셈. 실제 97년 서울대병원이 감마나이프를, 원자력병원이 PET를 들여와 지금까지 모두 5대의 감마나이프와 3대의 PET가 도입됐다.

국내 환자수나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1~2대면 충분해 공급과잉인 셈. S병원 진단방사선과 K교수는 "감마나이프의 경우 한달평균 이용환자가 10여명에 불과해 대부분의 병원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PET 역시 본래 기능과 달리 수익증진 차원에서 검사가 남발되고 있다" 고 고백했다.

고가 의료장비의 난립은 과잉진료까지 낳고 있는 실정. 서울대 보건대학원 문옥륜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MRI 총촬영건수가 94년 14만여건에서 96년 25만여건으로 1.8배나 증가했다는 것. 불과 3년새 5백억여원의 검사료가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추가로 지출된 셈이다.

반면 대당 평균이용실적은 94년 2천 1백여건에서 96년 1천9백여건으로 12%나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컴퓨터단층촬영검사 (CT) 처럼 MRI 등 고가 의료장비검사도 의료보험에 포함시켜 꼭 검사가 필요한 경우는 혜택을 받게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급여를 제한해야 한다" 고 말했다.

홍혜걸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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