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베이스볼, 여의도 베이스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3호 16면

이 땅에 프로야구의 새벽이 열린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가장 먼저 야구의 상징 백구(白球)를 손에 쥔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그날 그의 시구를 경호하기 위해 사복 경호원들이 선수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 틈에 섞여 함께 입장했다. 초대 시구자 대통령과 선수를 가장한 경호원. 이는 프로야구의 지울 수 없는 역사다. 무슨 의미냐 하면.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08>

우리 프로야구는 정치적 논리에서 탄생했고 권위주의적이라는 거다. 태생적 배경이 그렇다. 5공화국의 대통령은 정치적 필요와 무관하지 않게 프로야구를 출범시켰고 스스로 그 초구(初球)를 힘껏 던졌다. 그리고 사복 경호원들이 출동해 마운드를 둘러쌌다. 이 땅에 프로스포츠의 첫 획이 그어지는 순간은 이처럼 ‘스포츠’스럽기보다는 ‘정치’스러웠다.

‘그 어두운 80년대’가 지나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프로야구는 ‘프로답게’ 기업의 주도로 변화를 모색했다. 프로야구를 ‘산업’으로 포지셔닝하고 그 경제적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더불어 권위주의를 배격하고 정치적 논리와 영향력에서 탈피, 경영논리로 리그를 운영해야 ‘자급자족’이 가능하다고 스스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길은 멀고 그 과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총재가 바뀔 때마다 청와대·문화체육관광부 등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그렇다. 현 유영구 총재 선임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프로야구가 태어나면서 청와대와 정부의 과보호(?)를 업고 태어났고, 그 프레임(!) 안에서 28년간 살아왔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야구계 내부에서부터 정치권 인사에 기대려는 목소리가 높기도 하다.

2009년. 올해다. 프로야구 출범 28년째다. 올해 문학구장 SK-한화 개막전 시구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했다. 유 장관은 그날 시구 뒤 더그아웃을 돌며 악수를 했다. 경기는 지연됐고 팬들은 그 권위주의적 모습에 실망했다. 유 장관은 이후 국회 문광위에서 천정배 의원으로부터 그 장면에 대해 추궁받자 “다시는 그런 짓 안 하겠다”고 했다. ‘그런 짓’이 시구인지, 경기 시작을 지연시키는 악수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28년이 지난 프로야구에 권위와 정치논리의 잔재가 남아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번엔 유 장관의 시구를 추궁했던 천정배 의원. 그는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의 노조 설립 추진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팔을 걷어붙였다. 천정배 의원은 “선수 권익을 찾아 나선 것은 의의 있는 일이다. 앞으로 역경이 예상되지만 힘껏 돕겠다”고 했다. 이에 손민한 선수협 회장은 “이번 노조 결성 준비를 통해 선수들은 벌써부터 힘겨워하는 부분이 많다. 정치인의 많은 지원을 바란다”고 답했다.

프로야구를 ‘정치의 장’으로 바라보고 정치적 논리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결코 프로야구의 산업적 자립에 이롭지 않다. 지난 28년이 그걸 똑똑히 말해 준다. ‘야구’ 앞에 ‘프로’다. 프로야구는 대한민국 정부가 주최하는 선수권대회에 8개 구단이 출전한 게 아니다. 주인도 손님도 프로야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 들면 프로야구의 산업화는 점점 더 멀어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