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 급한 불은 껐지만 곳곳에 지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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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호흡을 가다듬을 여유는 생겼다. 그러나 변수가 많아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은행의 건강 상태에 대한 추경호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의 진단이다. 은행의 건전성이 좋아지고 있지만 구조조정에 따른 부실채권의 증가, 순이익의 감소, 미국 등 해외발 악재에 따라 호전되던 몸 상태가 다시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을 들썩이게 했던 ‘9월 위기설’ ‘3월 위기설’은 경제의 심장 역할을 하는 은행에 대한 의구심에서 비롯됐다. 결국 은행의 건강 상태를 통해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측정해 보면, 이 또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확신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일단 위기는 넘겼다=은행의 부실 여부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다. 이는 떼일 위험이 있는 자산(위험가중자산)에 비해 자기자본이 얼마나 충실하게 갖춰졌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높을수록 건강한 은행이라는 뜻이다. 국내은행의 BIS 비율은 지난해 9월 10.86%까지 떨어졌지만 은행들의 자구노력과 정부의 지원 덕에 지난 연말엔 12.31%로 높아졌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올해 3월 말 기준의 BIS 비율은 12%대 후반으로 소폭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은행의 외화자금 운용에도 여유가 생겼다. 금감원에 따르면 2월 말 기준으로 국내 18개 은행의 3개월 외화 유동성 비율은 106%로 두 달 전보다 7.1%포인트 상승하며, 지난해 9월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이 비율은 잔존 만기 3개월 이내 외화자산을 3개월 이내 외화부채로 나눈 것으로, 100% 이하면 부채가 자산보다 많아 외화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또 국민은행이 곧 10억 달러의 해외 채권을 발행하는 등 은행권의 외화자금 조달도 본격화되고 있다.

◆부실채권 늘어=BIS 비율과 함께 은행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부실채권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은행들의 부실채권 잔액은 2007년 말 7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4조7000억원으로 불어난 뒤 올해 3월 말에는 19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분기 기준으로 이는 2004년 3월 이후 가장 많은 액수다.

최성일 금감원 건전경영팀장은 “국내외 경기가 악화되면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부실채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이 가속되면 이 같은 부실채권은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떼이는 돈이 많아지면 은행의 수익성도 악화되게 마련이다. 게다가 지난해 고금리로 돈을 조달했지만 대출금리가 낮아지면서 은행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국내은행의 NIM은 지난해 말 2.31%에서 1.91%로 하락했다.

이와 관련,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6일(현지시간)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증가 등을 예로 들며 “한국 금융 당국은 은행권이 최악의 시기를 넘겼다고 보고 있지만 이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가 은행에 자본을 대는 등 기업에 대한 대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는 은행의 부실채권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금보다 대출이 많은 것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FT는 "다른 외국 은행들이 해외에서 돈 꾸기를 꺼리는 상황에서 한국의 은행들만 유독 지난해 말 현재 3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외부채를 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준현·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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