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사정 타협 왜 멈칫거리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노사정 (勞使政) 위원회가 고통분담선언을 한지 10여일이 넘도록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10개 의제의 1차합의 시한도 넘겼고 고용조정 (정리해고) 법제화 등 쟁점사안에 대한 이견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출범 당시의 고통분담 분위기와 달리 제몫 챙기기의 줄다리기로 화급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쟁점의 핵심은 정리해고제의 도입을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자는 것이고 이의 선행조건으로서 정리해고요건 강화.고용안정기금의 확충 등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노사 양측의 주장은 모두 일리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정리해고 요건강화는 선진국 선례에 따른다면 언제나 합의 가능한 대목이다.

반면 고용안정기금 10조원 확충이나 공무원노조의 교섭권 인정 등은 우리 현실로는 당장 실현할 수 없는 비현실적 요구다.

정부는 일반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어려운 시점에서 4조3천억원을 확보하겠다는 성의를 보였다.

또 경제 사정이 좋아진다면 더 이상의 기금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고려없이 무조건 10조원 고수라면 노사정 합의 자체를 부정하는 자세가 된다.

종래 관행으로 볼 때 공무원에게 단결권을 부여하겠다는 차기정부의 의지는 실로 놀라운 발상이고 차기정부의 큰 선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에 교섭권까지 달라면 너무 지나친 요구라는 게 일반적 정서다.

심지어 국회의원 숫자를 몇명으로 하고 대기업 구조조정은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까지 나온다니 너무 월권적 (越權的) 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에겐 그리 많은 시간이 없다.

부실금융 정리도 관련법이 없어 연기되고 있다.

오늘부터 열리는 임식국회에서 10개의 노동관련법과 4개 고용안정 관련법을 통과시켜야 하지만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 모두가 공염불이 될 급한 시점에 이르고 있다.

어느 한쪽이 아니라 모두가 살기 위해 서로 한발짝 양보하면서 고통분담의 대타협을 일궈내는 역사적 드라마를 국민들은 지금 기다리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