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희망의 나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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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근대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유토피아' 는 영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토머스 모어의 작품이다.

런던시청의 공무원이었던 그는 1515년 공무로 네덜란드에 갔다가 유명한 철학자 에라스무스와 깊은 교분을 맺으면서 영국의 현실에 환멸을 느껴 이 소설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제1부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형태를, 제2부에서는 그 같은 이상적 국가에서의 정치. 법률. 지식. 전쟁. 종교 등 여러 가지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모어가 이상향 (理想鄕) 이라는 의미로 만들어 낸 '유토피아' 의 어원 (語源) 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는 뜻의 그리스어 '우토포스' 였다.

이 소설은 라틴어로 씌어져 벨기에에서 처음 출판됐기 때문에 영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어는 헨리 8세의 총애를 받아 최고위직인 대법관에까지 올랐으나 왕의 재혼에 반대해 투옥됐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아이로니컬한 일이었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 은 플라톤의 '국가론' , 그리고 그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평과 맥이 닿아 있다.

플라톤 등 그리스 철인 (哲人) 들의 '우토포스' 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에 의해 정해진 조건 아래서 가장 가능한 체제에 이르고자 하는 '노력'을 '이상'으로 간주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상향이 설혹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을 추구하려는 노력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희망도 마찬가지다.

절망의 늪속에 빠져 있을 때 희망을 품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희망을 갖느냐 포기하느냐의 차이는 엄청나다.

지금 우리 처지에서는 희망을 가지려는 노력 하나만이라도 눈물겨울 만큼 소중하다.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설날 연휴중 들려 온 뉴욕 외채협상의 타결소식, 그에 따른 환율급락 및 주가폭등 소식도 우리가 아직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일찍이 김현승 (金顯承) 시인은 "빵 없는 땅에서도/배고프지 않은/물 없는 바다에서도/목마르지 않은/우리의 희망!" 이라 읊었고, 일제 (日帝)치하인 1931년 발표된 현제명 (玄濟明) 작사.작곡의 '희망의 나라로' 는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한 곳 희망의 나라로" 가자고 용기를 북돋웠다.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야말로 '깨어 있는 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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