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측 경제개혁법안 왜 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13일 발표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와 4대 대기업 총수간의 '5개부문 합의사항' 이 기업구조조정에 관한 입법안으로 구체화됐다.

30일 당선자측과 정부가 2월 임시국회에 넘기기로 확정한 입법안은 개정법률안 10개. 그동안 金당선자측이 비상경제대책위 등을 통해 이른바 기업개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재경원이 이를 받아 구체안을 마련하는 등 수차례의 핑퐁식 협의가 계속돼 왔다.

입법의 기본정신은 대기업 그룹에 '풀어줄 것은 확실하게 풀어줄테니 알아서 확실하게 개혁하라' 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증권거래법상 자사주 (自社株) 취득제한을 완화한다거나 공정거래법상 순수지주회사의 설립 허용 및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화 또는 폐지토록 한것, 또 구조조정시 기업결합 규제의 적용배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순수지주회사는 현행 대기업 그룹의 비서실이나 기획조정실을 법적으로 양성화시켜주는 것으로 그동안 전경련이 집요하게 요구해왔던 사안이다.

그전 같았으면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 독과점 강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감히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던 조치들이 과감하게 실현된 셈이다.

기업간 사업교환 (빅딜) 이나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부동산매각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부실기업정리를 하려해도 세금이나 규제 때문에 못하고 있는 문제점을 과감하게 해소시켜 주겠다는 의도다.

물론 '채찍' 도 있다.

자기 개혁을 게을리하는 대기업들은 앞으로 소액주주의 강력한 권한행사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크고 무엇보다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등에 따라 방만한 재무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되게 돼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주주총회가 이사나 감사를 직접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누적투표제 도입이다.

소액주주의 연합세력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소액주주의 대표소송권과 함께 기업경영 시스템의 일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외자도입법을 개정,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 (M&A) 을 허용한 것도 획기적인 변화다.

외국인이 10%주식을 취득하는 시점에서 해당기업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조항을 폐지키로 한 것이다.

법적으로만 보면 외국투자자들이 주식의 51%를 몰래 매집해 어느날 갑자기 경영권 행사를 선언할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됐다.

결국 '국제적 수준의 투명성과 재무구조' 를 통해 국제경쟁에 임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金당선자측은 그동안 외환위기를 한고비 넘긴 시점에서 노동계로부터 전산업 정리해고제를 양보받기 위한 연결고리를 대기업 개혁에 두어왔다.

이날 확정된 입법안들은 따라서 대기업 개혁의지의 표현이자 노동계에 대한 정리해고 조치의 예비적 단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전영기.이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