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부도 고려증권, 다른증권사에 점포·직원 함께 넘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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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점포와 직원들을 한꺼번에 사가세요.” 부도로 해체위기에 놓여있는 고려증권이 최근 회사자산 정리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묘안을 하나 짜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영업점포들을 그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함께 다른 증권사에 팔아넘기는 것. 고려증권은 이렇게 함으로써 가장 큰 골칫거리인 점포와 인원정리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회사가 공중분해되면 자칫 거리로 내몰릴 직원들 입장에선 새 직장을 얻게 돼 큰 불만이 없다.

고려증권은 점포를 하나라도 더 처분해 부실규모를 줄여야 3자인수가 수월해진다는 생각에서 이같은 거래를 택했다.

매각대상으론 주식위탁계좌가 1만개이상이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선택됐다.

현대증권은 경북 구미지점과 서울 장안지점, 일은증권은 서울의 구의지점과 양재지점을 영업직원들과 함께 '패키지' 로 인수했다.

이에 따라 현대에 '입양' 된 고려 직원은 구미지점 17명, 장안지점 13명등 30명이고 일은의 경우엔 구의지점 8명, 양재지점 7명 등 15명이다.

이들은 정식직원 신분을 유지함은 물론 직급도 대부분 수평이동됐다.

인수비용은 임대료와 시세전광판 등 비품을 포함해 점포당 10억원 내외가 소요됐다.

지난 21일 영업을 재개한 현대 장안지점의 경우 떠났던 고객들이 되돌아오면서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다.

최영삼 (45) 지점장은 “개업 3일만에 수익증권 신규 수탁고가 13억원을 넘어섰다” 며 “이런 속도라면 조만간 옛 실적을 회복할 것 같다” 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점포 폐쇄로 일도 없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다른 동료들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가슴이 미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일은 양재지점 직원으로 새 출발한 안인숙 (29) 씨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9년간 근무하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부도나고 고객들의 거친 항의속에 눈물깨나 흘린 그는 “양재지점은 영업연수가 15년에 달하고 계좌수도 1만2천개나 되는 우수점포라는 점 때문에 운좋게 인수됐다” 며 “죽다가 살아났으니 새로운 각오로 일하겠다” 고 말했다.

이번에 새로 취업된 이들은 “한달간의 지옥훈련에서 돌아온 것 같다” 며 “다른 회사들도 망한 다음 공멸할 게 아니라 부도사태만큼은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고 입을 모은다.

증권업계에서는 고려증권의 사례처럼 점포와 직원을 한꺼번에 묶어 동업 타사에 양도하는 '패키지 세일' 방식이 앞으로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좋은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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