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일본 대응, 단호하되 차분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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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정부가 한.일 (韓.日) 어업협정을 끝내 파기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단순히 어업과 관련된 양국간의 분쟁 차원을 넘어 동북아시아 전체의 안정적인 정세 발전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이 지역 정세안정에 한.일간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일본정부가 일방적으로 협정을 파기함으로써 양국관계가 상당기간 냉각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 일본정부의 결정은 다만 목전의 이익에만 급급한 무책임한 행동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일본정부가 무책임하다는 점은 이번 결정이 국제적인 신의를 저버린 채 순전히 국내 정치적 요인에 바탕을 두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일본측은 우리 정부와 전권을 위임받은 외교대표끼리 협정개정안에 합의해 놓고도 자국내에서 반대에 부닥치자 태도를 번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본측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최종안이라는 것을 내놓고 어업협정의 일방적 파기 가능성을 계속 거론해 왔다.

일본정부가 이처럼 우리를 압박한 것은 반대세력이 이탈할 경우 일본 내각이 붕괴될 가능성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집권세력의 이익을 위해 국제적 신의는 물론 동북아시아 전체에 미치게 될 부정적 영향은 아랑곳 않는 일본정치의 수준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정부는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30년이 넘는 현행 협정의 낡은 어업질서와 결별하고 새로운 질서를 조속히 확립하고 싶다" 고 말하며 차기 정부와 협정개정이 순조롭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새 환경에 맞도록 협정이 개정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같은 일본정부의 태도에 우리도 동감이다.

그러나 약속을 뒤집으면서까지 일방적으로 협정을 파기하는 측과 무슨 협상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우리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즉흥적인 반응으로 상대방의 감정만 건드리는 일은 피해야 한다.

돈독한 한.일관계는 감정에 좌우돼서는 안될 정도로 소중하다.

정부는 물론 국민.정치인이건 말 한마디, 행동 모두가 단호하지만 이성적이고 차분한 대응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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