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어린이날에 생각하는 아동의 웰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올해로 제87회 어린이날을 맞는다.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아이놈’ ‘저놈’을 ‘어린이’로 높여 부르자는 어린이들의 권리운동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24년 국제연맹(ILF)이 채택한 ‘아동인권선언’보다 1년 앞서 우리나라에서 제1회 어린이 날 기념식이 열린 것이다. 이렇듯 아동 권리 보호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아동은 지금 안녕한가?

현재 만 6세부터 17세까지 아동 인구 790만여 명의 약 15%에 해당하는 120만 명이 빈곤을 겪고 있다. 또 2008년 기준 우리나라의 아동복지 분야 예산은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0.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평균(0.5%)의 5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가 제공하는 미취학 아동을 위한 보육 및 조기교육 서비스의 경우에도 GDP 대비 0.12%로, OECD 평균(0.7%)에 한참 못 미친다. 보육교사 1인당 아동 수도 20.8명으로, 멕시코(28.3명)에 이어 최하위권이다. 안전 부문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아동의 사고 상해율과 사망률은 OECD 가입국 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많은 국가가 혹독한 경제위기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는 ‘아동의 웰빙이 앞으로 우리가 갖게 될 미래의 지표’라는 신념 아래 아동의 복지 향상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동에 대한 투자는 아동이 성인이 되었을 때 들어갈 사회보장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아동의 권리 현황을 파악해 문제를 제기하고 각국의 개선안을 제안 및 권고하는 아동권리 국제 모니터링 기구인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활동을 이끌고 있는 필자에게 아동의 권리 실현과 아동의 웰빙지수는 가장 민감하고도 중요한 사안이 되고 있다. 아동의 권리 실현과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막연히 느끼는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가늠해서는 안 된다. 정확한 통계수치와 증명할 수 있는 자료들이 바탕이 된 설득력 있는 대안 제시가 있어야 한다.

많은 선진국처럼 아동을 위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나라의 사례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올 10월 부산에서는 130개국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제3차 OECD 세계포럼’이 OECD와 통계청 공동 주최로 개최될 예정이다. 경제·사회·환경 등 다양한 부문을 아우르는 OECD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로, 그 근간에는 ‘근거에 기반한 정책 결정 문화의 확산’이라는 철학이 깔려 있다. ‘아동의 웰빙’ 역시 주요 의제 중 하나다. 미래의 주인으로서 아동을 위한 일관성 있는 정책 수립에 대한 그간의 논의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양희 성균관대 법대 교수 유엔 아동권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