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은 억지 부리지 말고 유씨 즉각 석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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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은 1일 34일째 억류 중인 현대 아산 근로자 유모씨 사건에 대해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는 남조선 당국과 보수 언론들의 망발을 단죄한다”고 쏘아붙였다. 남측이 유씨 문제의 불법성을 지적하자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이 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 형식을 빌려 반박한 것이다. 그는 “우리의 법은 우리 인민이 생명으로 여기는 존엄과 주권을 유린하는 데 대해서는 자비가 없다”고 강도 높게 협박한 뒤 “해당 기관에서는 현재 조사를 계속 심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씨의 억류를 장기화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어서 유씨의 신변 안전을 더욱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북한의 행태는 남북 간 합의 사항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다. 개성 공단에서 법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피의자 접견권을 보장토록 쌍방 간 합의를 해 놓고도 이를 멋대로 어기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유씨가 “우리의 존엄 높은 체제를 악의에 차서 헐뜯고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북한은 유씨와의 접견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선 북한의 그 같은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당연히 그런 주장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남북 간에는 ‘중대한 범죄 행위가 발생했을 때’에도 당사자를 만나 의견을 들어본 뒤 처리한다는 합의사항도 갖고 있다. 그러한 합의 절차를 무시해 놓고도 “자비가 없다”는 식으로 위협하는 것은 적반하장이요, 비열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막무가내식 행동은 남쪽의 대북 여론을 극도로 악화시킬 게 뻔하다. 그나마 북한에 호의적이던 일부 인사들조차 이 같은 ‘인질’ 행위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고립만 자초할 뿐이다. 북한이 현대 아산의 유모씨와 미국 기자를 인질로 잡은 뒤 미국과의 협상력을 키우려 한다면 이 또한 큰 오산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이런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더 깊은 무덤을 파고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에 대해 은인자중하던 오바마 행정부가 점차 인내력을 잃어 가고 있다는 중대한 흐름을 북한은 간과해선 안 된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룰을 어기면서 세계와 공존하는 길은 더 이상 없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남기 위해 북한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성을 되찾는 것이다. 그 첫발은 남북 간 합의사항의 이행이다. 유씨부터 조속히 석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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