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대물려 짐지우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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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도 대한민국 사람이고, 앞으로도 여기서 살 텐데 설마 우리나라에 해로운 일을 하겠습니까. 가급적 많은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를 돕도록 유도해 국가부도를 막겠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21일부터 열리는 정부와 국제채권단간의 뉴욕 외채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J P 모건의 한 한국인 관계자는 국내에서 일고 있는 '반 (反) J P 모건' 정서를 우려한듯 이같이 강조했다.

J P 모건은 현재 1백90억달러의 국채를 발행, 한국의 단기외채와 맞교환하자는 협상안을 내놓고 있다.

국채를 발행하면 상당한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한국을 살리는 것 외엔 관심 밖이다.

수수료를 생각하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한 관계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J P 모건으로부터 국채발행 수수료를 낮춰주겠다는 제안은 아직 없다.

되레 네덜란드식 금리입찰 (Dutch Auction)에 의한 '시장금리' 를 고수, 고금리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의 신용도가 떨어져 있는 만큼 금리입찰을 하면 금리가 두자릿수로 치솟을 것이란 기대에서일 게다.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는 "시티은행처럼 우리와 수십년 거래해 온 많은 외국은행들은 거래를 계속하기 위해 한국이 조속히 정상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며 "그러나 이와 달리 한국에서 이번에 단단히 돈벌이를 하겠다는 곳도 있다" 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林부총리는 "네덜란드식 금리입찰은 우리처럼 자금조달 규모가 크고 신용이 떨어져 있을 때는 금리가 너무 높아지는 불리한 방식" 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사실 정부는 J P 모건의 독주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

J P 모건이 주도하는 국제금융시장의 비정한 현실에 휘말려 한번 '바가지' 를 쓰면 후손에게 두고두고 엄청난 짐을 지우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 대표단은 21일 뉴욕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외국 금융기관들은 모두 이번 한국 특수 (特需)에서 단단히 '한몫' 을 챙기려고 덤벼들 것이다.

비굴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강경하게 나가다 판을 깨지도 말면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요즘 시중엔 "정부는 시티와 골드먼 삭스, 비상경제대책위원회는 J P 모건과 친하다" 는 말이 나돌고 있다.

대표단내에 행여 서로 다른 목소리가 들리고 공 (功) 다툼이 벌어진다면 협상 전도는 암담할 수밖에 없음을 잊어선 안된다.

고현곤<경제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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