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를 넘기자고 모든 경제주체가 허리를 조르는 가운데 일부 공공기관에서 실내온도를 여름 날씨처럼 덥게 하고 예산과 기금을 멋대로 쓴다는 소식은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난국극복의 절박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그 실천에 솔선수범해야 할 공공기관이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가.
지금 대부분의 민간 사무실은 실내온도를 20~17도로 낮추고 있다.
석유 한방울 안 나오고 1년 수입 에너지 값이 2백40억달러를 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는 비록 IMF 한파가 닥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할 일이다.
하물며 하루 하루 숨가쁘게 넘어가는 국가 부도의 위기 속에서 이렇듯 전기를 낭비하고 에너지를 과사용하는 일이 딴데도 아니고 공공기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보도된 바로는 정부1, 2청사와 국회의원회관 등 몇몇 공공기관 사무실은 셔츠나 얇은 블라우스 바람으로 일하고, 방안이 덥다고 창문까지 열어 놓았다고 한다.
내복을 입고 점퍼를 걸치는 이른바 IMF 복장을 차린 이웃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22도도 춥다고 전기난로까지 사용하는 곳도 있다.
아직도 정신을 덜 차렸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정부투자기관 또는 출연기관이 자체 예산을 눈 먼 돈처럼 멋대로 쓰고 각종 기금을 이리저리 낭비한다는 소식은 더 분통을 터뜨리게 한다.
어느 국책은행은 총재 급여를 3년간 90%나 올리고 어느 연구기관은 정부 지원금을 가지고 직원 아파트를 마련, 일반인에게 임대까지 했다.
물론 해당기관은 나름대로 할 말이 있겠으나 감사원에 지적된 방만한 운영실태는 혀를 차게 하기에 충분하다.
한편 일반회계 예산의 1.5배가 넘는 75조원의 국가기금중 24조원이 부실 운용되고 있다.
7개 투자기관이 정원 외로 수용한 '위성 공무원' 은 6백55명이나 된다.
이러고도 정부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노사정 (勞使政) 위원회에서 국민 대단결의 사회협약을 맺자고 호소할 자격이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기회있을 때마다 정부가 위기관리 능력을 보이라고 각계는 호소한다.
정권 교체기에 따르는 기강해이는 사회를 무질서로 몰 수 있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비상시에는 비상시답게 공공기관이나 공직자가 난국 극복에 앞장서라고 권고한다.
이 모든 호소와 충고와 권고가 결국 '쇠 귀에 경 읽기' 가 되고 있으니 아무래도 한국은 더 고생을 해봐야 깨닫는 별 수 없는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경제주권을 유보 (留保) 당하다시피한 IMF 관리체제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상처나게 했다.
국민을 더 실망시키기 전에 공공기관이나 공직자의 대오각성 (大悟覺醒) 을 바란다는 말밖에 더 이상 충고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