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영일기]류덕희 경동제약 대표이사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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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 금융하의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기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뼛속 깊이 느껴지는 나날이다.

시중은행들이 IMF가 요구하는 국제결제은행 (BIS) 기준비율을 맞추느라 기업 대출을 중단하거나 대폭 줄이는 바람에 그간 부실했던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내실 경영을 해 온 우량 중소기업들까지 부도 위기의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을 바라보면서 과소비를 일삼던 우리 국민의 자만심과 방만한 경영을 일삼은 기업인과 부도덕한 정치인들의 정경유착 등으로 병들어 온 사회구조가 결국 우리의 경제 주권을 포기하도록 만들고야 말았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를 자초해 온 정부와 기업들뿐 아니라 국민 한사람 한사람도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그동안 대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세계화에 대비한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보다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제품만을 양산하고, 외형에만 치중한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구색 맞추기식 경영을 해왔다.

정부의 보호 아래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고 온실처럼 성장한, 몸집만 비대하고 알맹이 없는 기업은 결국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면 경제와 경영도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치열한 세계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이러한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라면, 경쟁의 무기는 바로 생존을 위한 기술개발일 것이다.

비록 자본력이 미흡한 중소기업이라도 번뜩이는 창의력과 과감한 투자를 통해 전문분야에서의 경쟁력 있는 기술과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이 어렵다고 해서 마음마저 위축되다 보면 점점 더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는 옛말처럼 암담하게 느껴지는 IMF구제금융하에서도 기업을 살려 나갈 길은 있다고 믿는다.

이 살 길을 찾는 것이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영이 더 악화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경영비용을 절감하여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에 노력해야 할것이다.

지난해 우리 회사는 원료합성 공장을 준공했다.

시장 개방과 수입 자유화가 시작될 때부터 제품원료를 수입에만 의존하면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 남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해 온 결과 자체 원료 생산과 개발을 실현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게 된 것이다.

회사 규모에 비해 조금 무리한 투자를 했지만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가 발생하고 보니 잘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놓은 것 같아 든든한 마음도 든다.

과거사를 돌아볼 때,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한데 뭉치고 지혜를 발휘하는 뛰어난 국민성을 보여 주었다.

지금의 현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굳건한 의지와 자신감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류덕희 <경동제약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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