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현대미술 27인전 … 오래된 인도의 새로운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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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드 굽타는 인도 에서 식사용으로, 제사용으로, 도시락으로 널리 쓰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식기를 엮어 매달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장 입구에 실물 크기 코끼리가 서있다. 코끼리의 몸 전체는 정자(精子)무늬로 덮였다. 어딘가로 일제히 달려드는 수많은 정충은 과잉된 생명력의 한켠에서 시름시름 소진되는 피로함, 상실을 느끼게 한다. 인도의 상징인 이 코끼리는 일어서려는 중인가, 혹은 쓰러져 있는 것인가. 바르티 케르의 ‘피부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언어를 말한다’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인도현대미술-세 번째 눈을 떠라’전이 열리고 있다. ‘인도의 데미언 허스트’라고 불리며 세계 미술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수보드 굽타를 비롯한 인도 작가 27명의 설치·영상·사진·회화 110여점이 모였다. 중국에 이어 인도가 아시아 미술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그동안 국내에도 간간이 인도 현대 미술이 소개돼 왔다. 이번 전시는 그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떠오르는 인도 현대미술의 대표작가=수보드 굽타는 인도 전역에서 널리 쓰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식기를 작품 소재로 삼는다. 그는 물질문명·도시화·이동 등 인도가 안고 있는 상황을 역동적으로 나타내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있다. 지티시 칼랏은 거대하게 확대한 1루피 동전을 전시했다. 이는 곧 급격한 경제 성장에서 온 빈부 격차를 동전의 양면처럼 안고 사는 인도의 현실이다. 몇몇 인도인은 세계 10대 갑부로 등극하는 반면, 나머지 3억 인도인은 1달러도 채 되지 않는 돈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그 부인인 레나 사이니 칼랏은 종교 갈등이 첨예한 인도·파키스탄 분쟁의 죽음과 희생, 역사적 상처를 시각화했다. ‘주름/균열/윤곽’은 여성의 벗은 등에 분쟁 때마다 바뀌는 국경선을 그려 ‘어머니 인디아’로 불리는 모국의 상처를 보여준다. ‘동의어’라는 제목의 초상화 연작은 실종자들의 이름을 인도 각지의 여러 다른 언어로 새긴 고무도장을 모아 만들었다.

◆일본 기업미술관 기획전 유치= 전시는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의 개관 5주년 기념전 ‘찰로!(가자) 인디아: 인도 미술의 신시대’를 그대로 가져왔다. 모리미술관은 지난달 15일까지 4개월간 이 전시를 열었다. 배순훈 관장은 “예정돼 있던 전시가 갑자기 취소되면서 모리미술관의 인도전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내용이 충실하다해도 이웃나라 기획전을 유치한 것이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이 마련한 상반기 최대 전시라는 점은 아쉽다. 6월 7일까지. 02-2188-6114.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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