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문화혁명]2.도도한 올터너티브…힐리 크리스털 인터뷰(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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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국 음악가 힐리 크리스털 (66) 은 미국 동부 펑크록의 대부다.

그는 놀 곳 없어 떠돌던 펑크를 자신이 운영하는 얼터너티브 클럽 CBGB에 받아들여 살아 숨쉬게 했다.

펑크록은 가치가 혼란스러웠던 70년대 미국 사회의 상징적 표현 아닌가.

우중충한 겉모습부터 펑크철학 냄새를 풍기는 이 클럽에서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눠봤다.

- 펑크록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은 낮은 곳의 음악이고, 단순하고 쉬우며 아름다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다.

젊은이들의 느낌을 교환하기 위한 수단…. 사랑타령이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초창기 '토킹 헤드' 등이 대표적인 그룹이었다.

애틀랜타 출신으로 매우 율동적인 음악을 만들었던 'B52' 는 쓰레기.차고 같은 쓰잘 것 없는 것들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 여기 출신의 유명한 밴드나 가수는.

"그중 하나는 루이스 바네사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여기서 일해 왔다.

그녀는 최근 40주 가까이 매주 월요일마다 밴드 라이브 쇼를 주관하고 있다.

거기서 만들어진 앨범이 수백만 장이나 팔렸다.

'리빙 컬러' 는 3년 반 여기서 연주했고 '부시' 와 '사운드 가든' 도 무대에 섰었는데 전설의 그룹 '너바나' 가 가장 먼저 인기를 얻었다.

수백 개의 그룹이 있어 일일이 다 얘기할 수 없을 정도다."

- 펑크록의 초기 모습은.

"73년 12월 문을 열 당시 컨트리.블루스 등만이 무대에 설 수 있었고 록밴드들은 연주할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일요일을 택해 그들에게 기회를 줬다.

나중에 유명하게 된 그룹 '텔레비전' '토킹 헤드' 등이 초창기 멤버들이다.

펑크록커인 패티 스미스가 와서 7주 동안 공연을 한 후인 75년 7월 그녀는 레코드회사인 아리스타와 계약을 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뉴욕에서 실력은 있으나 알려지지 않은 록밴드를 위한 페스티벌을 열었다.

페스티벌을 계기로 전 세계에서 팬들과 평론가, 그리고 기자들이 몰려왔다."

- 왜 펑크록 같은 올터너티브 음악이 주류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는가.

"하나는 디스코 등 주류음악에 대한 문화소비자들의 반기다.

당시 주류음악들은 매우 정형적이었는데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젊은이들로 하여금 싫증을 느끼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반전.인종차별 철폐.성차별 폐지 등 많은 목표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런 것도 없어지고…. 또 다른 하나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담아 자신들의 방식대로 곡을 만들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들은 음악가는 아니지만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을 배웠고 쉽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도록 음악을 단순화했다.

그들은 삶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펑크는 분노다.

앞으로의 언더그라운드 음악도 우리 눈앞의 삶에 대한 분노가 주류를 이루면서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달려갈 것으로 본다.

앞으로 음악은 우리가 하고 싶은 다양한 말을 전하는 미디어로 작용할 것이다."

뉴욕 = 김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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