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주말 '짠돌이 외출'…농구장등엔 넥타이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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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농구장등엔 넥타이부대 정광일 (鄭光一.42.H건설과장.서울노원구상계동) 씨는 지난 2일 프로농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초등학생 두 아들을 데리고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을 찾았다.

경기시작 30분전인 오후2시30분쯤 경기장에 도착했으나 鄭씨가족은 입장권 매진으로 이날 경기를 볼 수 없었다.

스키장에 가자고 졸라대던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鄭씨는 차마 그대로 귀가하기가 미안해 서울중구의 M극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가족영화를 상영중인 이 극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鄭씨는 결국 두 아들의 실망감을 중국요리로 달래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레저도 국제통화기금 (IMF) 형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발디딜 틈 없던 스키장이나 골프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 스포츠경기장.극장.고궁 등이 붐비고 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고가형 레저는 위축되고 큰돈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절약형이 인기다.

대표적인 겨울스포츠인 농구의 경우 지난달까지만 해도 전년에 비해 입장객이 40%정도 적었으나 지난 2일 잠실체육관 표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간 관람객이 5천여명이 넘는 등 최근에는 연일 매진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달라진 것은 관람객 숫자만이 아니다.

가족중심의 레저가 확산되면서 경기장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예년 같으면 10대의 '오빠부대' 일색이던 농구.배구 경기장에는 요즘 30~40대 '아저씨' 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회사부도로 팀 해체위기에 처한 고려증권 배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경기장에는 정체불명 (?

) 의 넥타이부대가 몰려들고 열띤 응원을 보내는 광경이 벌어진다.

배구협회 관계자는 경기장에 성인팬이 늘고 있는데 대해 "마음껏 고함을 지르는 응원을 통해 경제난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IMF한파를 피해 인파가 몰리기는 극장이나 고궁.산 등도 마찬가지.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만화영화를 상영하는 서울 종로 서울극장은 최근 3주연속 전회 매진사태를 빚는 등 대부분의 극장이 주말이면 가족과 연인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또 창경궁과 덕수궁도 최근 평일에는 1천5백여명, 주말에는 4천여명이 찾아 지난해보다 5%정도 입장객이 늘어났다.

서울서초구 예술의전당 미술관에도 8일 1천4백여명이 찾아 예년 수준을 넘었으며, 북한산 국립공원에는 지난주말 지난해보다 5천여명이 많은 2만여명이 등산을 했다.

반면 예년 같으면 이맘때쯤 발디딜 틈조차 없던 양지.베어스타운.서울리조트 등 서울근교 스키장은 내장객들이 30~40% 줄었으며, 주말 골프장도 10~20% 감소했다.

한편 한국도로공사는 9일 최근 행락객이 줄어 영동고속도로 통행량이 주말 16.7%, 평일 19.6%감소했다고 밝혔다.

강갑생.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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