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된 노무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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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오는 30일 국민은 역사상 세 번째로 검찰청사에 들어가는 전직 대통령을 보게 된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실 불안과 미숙함이 요동치던 시절의 권력자였다. 12·12 쿠데타와 광주학살이라는 역사적 원죄도 있었다.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이 나왔지만 어두운 시절에 있을 수 있었던 어두운 이야기였다. ‘정의사회’(전두환)와 ‘보통사람’(노태우)을 외쳤던 그들이었기에 국민의 분노가 치솟긴 했어도 ‘5공 뿌리’의 부패상을 이미 겪은 터라 뼈에 사무치는 배신감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른 시대의 다른 인물이었다. 스스로 목이 터져라 그렇게 외쳤다. 노무현의 소환이 더욱 서글픈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은 지금 서너 가지 칼날을 받고 있다. 부인의 100만 달러, 아들·조카사위의 500만 달러, ‘친구’ 비서관의 특수활동비 횡령 10여억원 등이다. 그는 자신의 관련 혐의를 부인한다. 시인하는 건 1억원짜리 손목시계뿐이다. 그는 검찰에서도 계속 부인할 것이다. 그의 주장이 옳을지도 모를 일이다. 검찰은 박연차 회장의 진술을 비롯해 여러 칼날로 그를 겨눌 것이다. 하지만 계좌추적·수표 또는 다수의 증언 같은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그는 혐의에서 풀려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검찰 수사에 달려 있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되었든 이미 대부분의 국민 마음속에 전직 대통령 노무현은 역사적 범죄자·배신자가 되어 있다. 실정법의 그물에 걸린 게 없다 해도 노무현은 도덕적·역사적 의미에선 유죄다.

그가 포토라인에 서기 전까지 그의 순교자적 언행에 많은 이가 고생하고 속았다. 깨끗한 정치 한번 해보겠다는 말에 열린우리당을 찍은 손가락들이 울고, 탄핵이 불쌍해 그를 도와주었던 이들이 가슴을 치고 있다. ‘힘없는 대통령 형님’에 접근했다가 대통령의 독설에 자살한 사람의 유족은 아직도 그 한(恨)을 새기고 있다. 반면 그의 가족과 측근·정권은 앞다투어 챙겼다. 형님·부인·아들·조카사위가 등장하고 386 측근과 친구들이 종횡무진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자기 자신만 모르고 말이다. 노무현은 한나라당을 차떼기라고 몰아쳤지만 자신의 가족은 외환딜러 패밀리였다. 이런 배신과 위선이 없다.

검찰의 노무현 소환으로 박연차 사건은 중대한 전환점을 돌고 있다. 검찰은 노무현 그룹이 끝까지 움켜쥐고 있는 진실을 캐내야 한다. 부패의 진상은 무엇인지,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관여돼 있는지, 박연차의 이권을 위한 권력형 거래는 없었는지, 영부인의 채무와 아들의 투자는 도대체 무엇인지 그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형사적 혐의자나 참고인이 아니라 역사적 피의자라는 속죄의 심정으로 검사 앞에 앉아야 한다. 그런 엄청난 부패의 소용돌이를 몰랐다면 자신이 왜 무능하고 무지했는지, 그 회오리를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왜 막지 못했는지, 자신도 관여했다면 얼마나 했는지, 누구 말대로 ‘생계형 범죄’였다면 자신이 얼마나 곤궁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것이 한때 지지자들이 붙여 주었던 애칭 ‘바보 노무현’에 보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