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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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1장 슬픈 아침 ⑥

아내는 3개월 동안이나 끈질기게 이혼할 것을 요구했었다.

냉정하고 일방적인 요구였다.

설득이라는 것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었다.

지금은 장윤정 (張允貞) 이란 객관적인 이름만으로 기억해야할 그 여자에게 좋아하는 남자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무조건 그에게 진력이 나버린 것일까. 그 두가지 경우를 두고 오랫동안 저울질했었다.

첫번째의 경우는 그녀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쫓겨날 염려가 없는 직장이 있었으므로 예상 가능한 것이었고, 두번째의 경우는 그 자신의 무표정과 과묵한 성격, 그리고 5개월 전에 있었던 퇴직으로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설득을 하였어도 그녀의 심정에 갈려있는 해답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3개월의 줄다리기는 몇 시간전에 어설픈 결말이 나버렸다.

결국은 만지작거리던 도장을 던져주고 집을 나선 것이었다.

그 나이 마흔 다섯, 열여덟살이 된 딸 정민이를 그녀 곁에 남겨 두었다.

집을 나설 때, 정민이는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마지막 재산이었던 낡은 소형 승용차 한 대도 지금은 낯선 주유소에 유치시켜 버렸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건물 모퉁이로부터 사내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내의 뒤쪽으로 또 다른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모습을 명료하게 가름할 수는 없었지만, 여자인 것만은 틀림 없었다.

그러나 여자는 밖으로 나서지 않고 건물 모퉁이에 하반신을 숨기고 서서 사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내는 여자의 은밀한 배웅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차를 몰아 휴게소를 벗어나기까지 전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쑥스러웠던 탓일까. 어색한 분위기를 그가 희석시켜야할 것 같았다.

“이십분만 기다려 달라했었는데, 사십분이나 지났어요. ” “오랜만에 배를 타봤더니, 배멀미라는 게 나서 억시기 어지럽데요. 배멀미 추스르느라고 시간 쫌 끌었니더. 밤새도록 차만 타고 다닐 게 아니라, 간혹은 배도 타봐야 사람이 균형감각이 옳게 잡히는 기라요. ” “애인이었소?” “꽁생원인줄 알았더니 둘러치는 말은 번개같이 재깍 알아 묵네요? 저 여자가 과부인데 아직 애인이라 카기는 뭣하고…, 지내 댕기다가 푼돈이나 보태주고 배꼽에 때가 묻었나 안묻었나 맞춰보는 사이쯤 되지요. 상부상조라 카는기 있지 않습니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게 바로 그거 아입니껴. ” “아직 결혼 전입니까?” “숙맥같은 소리만 골라 하네요. 올빼미 새끼메치로 낮에는 자고 밤중에만 나댕기는 거꾸로 된 인생이 바로 난데, 어느 칠칠찮은 기집년이 날 좋다고 결혼하자 하겠습니껴. 결혼생활이라는게 가계부 적고 난 뒤에는 섹스 아니면, 달리 할 일이 없는 생활인데, 낮에만 섹스하자고 대드는 나 같은 사나를 좋다 카겠습니껴. 아까 그 여자는 나이가 서른 아홉인데, 내 보다 세 살이나 손위시더. ” “그럼, 형씨 나이는 서른 여섯이란 건데, 나보다 아홉 살 손 아래군. ” “형님 뻘은 차안에 두고 내 혼자만 하초에 응어리 빼고 와서 억시기 죄송스럽네요. ” 사내는 운전석의 생수병을 뽑아들더니 벌컥벌컥 들이키고 난 뒤 뚜껑을 닫지 않고 그에게 내밀었다.

물병을 건네받으며 그는 말했다.

“늦었지만, 난 한철규 (韓哲奎) 라 해요. ” “저는 박봉환 (朴鳳煥) 이라 캅니더. 이름이 촌시러워 보입니껴?” “아니오. 그런 느낌은 없어요. ” “통성명을 했으니 물어 봅니다만, 속초에 산다는 시인 찾아간다는 말은 거짓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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