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안기부의 장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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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년초 미 정부관리 한 사람과 얘기 끝에 나온 말이다.

이 관리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가 안기부 업무보고중에 해외경제정보 수집을 강조한 의중이 궁금하다" 며 정보요원들을 '산업스파이' 로 만들겠다는 뜻이냐고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이에 필자는 "과거 안기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는 의혹이 있었고 게다가 한국의 경제위기를 정보기관이 미리 예측못한 데 대한 질책이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사실 냉전종식후 서방국 대부분의 정보기관들은 안보중심의 첩보활동에서 경제부문으로 관심을 확대했다.

하지만 미국의 중앙정보부 (CIA)가 지난해 한 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국가안보를 총체적 안보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면 정보 또한 분야를 나눠 생각할 수 없다.

미 행정부 안에도 정보업무를 다루는 수많은 부처들이 있지만 수집된 정보는 결국 한 곳으로 모인다.

문제는 여러 경로를 거쳐 올라온 첩보가 수렴돼 전문가들의 분석을 거친 정보가 정책결정에 활용되는 가에 있다.

따라서 신정부가 안기부의 역할과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있어 우선 정보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위 비선 (비線) 을 거쳐 올라온 첩보에 지도자가 솔깃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거대한 정보기관을 유지한다 해도 쓸모가 없다.

오히려 정책결정 과정에 혼선만 더할 뿐이다.

게다가 안기부가 수집.분석한 정보가 부처이기주의 통에 묻혀버린다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다.

사실 지난해말 금융위기가 몰아닥치기 몇달전 안기부의 '조기 (早期) 경보' 가 울렸지만 당시 정치일정 속에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탈냉전시대에도 여전히 열전 (熱戰)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과 미국에 대한 안보 및 경제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것임을 감안할 때 정보기관의 역할과 역량은 활성화돼야 한다.

아울러 수집된 정보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하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개인의 출세를 위해 정보기관 조직을 징검다리로 이용했던 행태, 선거때면 특정후보를 위해 국가정보를 악용하는 사례들은 이제 안기부 안에서도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의 정보기관들은 우수대학 졸업자 유치에 적극적이고 또 선발된 이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정보기관과는 악연 (惡緣) 인 새 대통령을 맞았지만 안기부는 국익과 직결된 다양한 정보를 한 곳에 수렴해 분석하는 말뜻 그대로 '중앙정보부' 로 다시 태어나야 마땅하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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