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베토벤의 ‘피델리오’ 17년 걸린 두번째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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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시간 좀 내주오. 갈 데가 있소.” 무악오페라의 김관동 공연예술감독이 2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짧게 부른 ‘오페라 아리아’다. 한 TV 광고에서 이용했던 이 소절은 베르디의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김감독이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친숙한 노래만 무대에서도 계속 듣게 된다면 우리 예술가들이 청중을 편식시킨 거겠죠.”

지난해 창단한 무악오페라(단장 김정수)가 편식을 피하려 고른 작품은 베토벤의 ‘피델리오’. 1992년 이후 17년만에 다시 한국 무대에 선다. 당시 국립오페라단에서 우리말로 가사를 바꿔 공연했던 것이 ‘피델리오’의 마지막 기록으로 남아있다.

무악오페라의 최승한 음악감독은 “감당하기 힘든 작품 규모 때문에 자주 공연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피델리오’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120여명이 동원되는 합창단. 최감독은 “성악가에게 악기의 소리를 원했던 베토벤의 작품을 부를만한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모으는 것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무악오페라는 이번 작품에서 연세대 음대 재학생과 졸업생 중심으로 이뤄진 대형 합창단을 꾸렸다. “소리의 감동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최감독의 각오다.

‘피델리오’는 오페라 창작을 유독 어려워했던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다. 교향곡 세 곡을 완성한 후 그는 당시 인기있던 장르인 오페라를 위한 소재를 찾아냈지만, 첫 작곡 이후 두번을 고쳐서 새로 썼다. 처음 두 버전은 혹평 받았고, 마지막 것만 인정 받았다. 이후 연극 ‘에그몬트’에 배경 음악을 썼지만 오페라 작업에는 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로시니·모차르트 등 오페라를 편하게 생각했던 작곡가들의 작품에 비해 베토벤의 오페라가 어려운 이유다. 과감히 베토벤을 선택한 무악오페라는 “앞으로도 한국에서 만날 수 없었던 오페라 작품을 계속 제작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5월 7~9일 오후 8시, 10일 오후 4시/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02-720-3933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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