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독트린’ 박수는 받았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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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의 섬나라인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17∼19일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의 주인공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오바마는 베네수엘라 등 반미 국가의 정상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들도 웃는 낯으로 오바마를 대했다. 회의에선 쿠바에 대한 미국의 금수 해제를 놓고 의견이 갈렸기 때문에 공동선언문이 채택되지 않았으나 분위기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재임 때와 확연히 달랐다.

오바마는 회의 개막 때부터 “미국이 과거의 실수를 인정할 용의가 있다”거나 “잘 알지 못하는 걸 배우러 왔다”며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부시 행정부 8년 동안 미국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봤던 다수의 중남미 국가 정상들 태도가 달라졌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오바마와 만난 다음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3년 전 같은 회의장에서 부시 전 대통령을 “악마”라고 불렀고, 지난해 9월엔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한 차베스의 입에서 미국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이 나온 건 처음이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이제 모든 사안을 놓고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오바마처럼 중남미를 존중한 인물은 없었다”(셀소 아모링 브라질 외무장관)는 ‘오바마 예찬론’도 나왔다. 오바마는 19일 기자회견에서 “적대국에 먼저 손을 내미는 건 미국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반미 국가나 적대국과의 문제를 대화와 설득으로 푼다는 ‘오바마 독트린’은 OAS 회의에서 일단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나 큰 성과를 낼 것인지 예측하긴 이르다. AP통신은 “방향이 옳다고 해서 반드시 건강한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고 보도했다. 쿠바의 전 최고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20일 오바마에게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를 종식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에선 공화당의 공세 표적이 되고 있다.

존 엔신 공화당 상원의원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가 세계에서 가장 반미적인 차베스와 만나 웃는 모습을 보인 건 무책임하다”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는 “적대적이었던 나라를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과 대화의 문을 여는 건 나약함의 표시라는 게 그동안의 관념이었으나 미국인은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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