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무릎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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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14면

나는 창의력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한다. 평소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창의적인 옷차림을 하고 싶어 옷장을 뒤졌지만 나는 항상 입는 옷을 선택하고 만다. 역시 나는 창의력이 부족하다. 아내도 어딘가 외출하기 위해 거울 앞에서 서성댄다. 그런데 바지 차림이다. 남편은 창의력은 부족하지만 참견력은 왕성하다.

남편은 모른다

“치마를 입지 왜?”
“그럴까?”
아내는 긴 치마를 입고 거울 앞에 선다.
“봄인데 짧은 치마가 낫지 않을까?”
“이 나이에 짧은 치마는….”

아내도 창의력이 부족한 것일까. 아내는 망설이다가 결국 다시 바지 차림으로 나간다. 세미나는 창의력으로 충만했다. 남편은 ‘창의력이 발휘되려면 재능이 관심사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 배움을 믿고 남편은 오랜 콤플렉스를 내려놓는다. 누구에게나 있다는 재능은 자신에게도 있을 테고, 관심사로 말하자면 남편에겐 ‘아내’가 있으니까 말이다.

세미나에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관심사인 아내가 반바지 차림으로 맞이한다. 그때 남편은 아내의 오른쪽 무릎 위 흉터를 발견한다. 아내는 어릴 때 족자놀이를 하다가 데인 상처 때문에 무릎 위에 엄지손가락만 한 흉터가 있다. 그래서 젊었을 때도 아내는 치마를 잘 안 입었다. 간혹 입을 때는 긴 치마만 고집했던 것이다.

그날 밤 남편은 아내와 사랑을 나눈다. 남편의 재능은 관심사의 흉터에 집중한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아내의 몸은 상처투성이다. 아내는 멍도 잘 들고 툭하면 상처가 생겼다. 아내는 겉만 보면 강하고 씩씩한 사람 같지만 속은 한없이 여려 쉽게 다치고 상처 받는 사람이다. 남편은 살면서 아내의 몸과 마음에 숱한 상처를 주었다. 남편은 아내의 오른쪽 무릎 위 흉터를 쓰다듬는다.

“뭐 해?”
아내는 부끄러운지 몸을 뒤친다. 아내에겐 흉터가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흉한 흔적이다. 그것을 남편도 안다. 그래서 남편에게는 그 흉터가 더 사랑스럽고 애틋한지 모른다. 흉터도 아내 삶의 결이고 무늬다. 남편은 아내의 흉터에 입을 맞춘다. 간지러운지 아내는 웃는다.

“좋아?”
대답은 안 하고 아내는 자꾸 웃기만 한다. 재능이 관심사를 만난다는 게 이런 것이겠지. 남편은 집중적으로 아내의 흉터를 애무한다. 아내가 남편의 귀에 속삭인다.
“언제까지 무릎만 만질 거야?”
그렇다. 이제 창의력을 발휘할 시간이 온 것이다. 게다가 남편은 창의력 세미나에까지 참석하지 않았던가. 나는 아내의 왼쪽 무릎을 만지기 시작한다. 글 김상득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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