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을 빛낸 스포츠 스타]8.권은주…세계도 놀란 '철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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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그녀의 첫 인상은 '미성숙' 이다.

자그마한 키에 깡마른 몸매, 보송보송한 얼굴의 솜털, 고르지 않은 치열, 수줍은 미소 등 영락없는 개구쟁이 시골소녀의 모습이다.

다름아닌 한국 마라톤의 신데렐라 권은주 (20) 를 일컫는 말들이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엄청난 재능을 숨기고 있다.

지난 10월 춘천국제마라톤대회. 그녀는 의암호를 휘감는 강풍을 뚫고 2시간26분12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는 오미자의 한국최고기록을 무려 3분57초나 앞당긴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처음 뛰어본 마라톤에서 일궈낸 성적이라는 점이다.

지난 6월 전국육상선수권대회 5천m, 9월 하프마라톤에서 잇따라 한국신기록을 낸 뒤 첫 출전한 마라톤에서 기어코 일을 낸 것이다.

이 단 한번의 기록으로 그녀는 세계여자마라톤의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여자마라톤의 왕국으로 자부하던 일본의 신문들은 즉시 "한국에서 괴물이 나타났다" 고 대서특필했다.

이어 오사카.런던.보스턴 등 주요 국제마라톤 관계자들은 거액의 출전료를 제시하며 권은주의 파견을 강력히 요청했다.

권은주의 등장은 시기적으로도 절묘했다.

최근 케냐의 텔가 렐루프를 비롯해 벨기에의 말린 렌더스, 일본의 스즈키 히로미.이토 마키코 등 걸출한 스타들이 잇따라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마라톤은 이들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잉그리드 크리스티안센과 조안 베노이트가 풍미하던 80년대 초중반 이후 제2의 황금기를 맞을 전망이다.

현재 그녀의 기록은 역대 여자마라톤 기록중 22위, 올해만으로는 4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녀의 기록이 여기서 멈추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가 이제 스타트라인에 섰을 뿐이다.

마라톤의 명조련사 정봉수 (코오롱) 감독의 지도하에 아직도 '미성숙' 인 그녀가 갈아치울 기록경신 행진을 지켜보자.

왕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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