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대선]역대 대선 표흐름…7대부터 지역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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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역대 대통령선거에 나타난 표의 특징은 대체로 '여촌야도 (與村野都)' '지역감정' '사표 (死票) 방지' '안정심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역대 대선중 직선제로 치러진 선거는 2~7대, 13~14대 등 모두 8회. 2, 3, 4대 선거는 이승만 (李承晩) 대통령이 70%이상의 압도적 차이로 당선됐다.

2대때는 조봉암 (曺奉岩).이시영 (李始榮) 후보와 대결, 74.6%를 얻어 승리했다.

3대때는 신익희 (申翼熙) 후보가, 4대때는 조병옥 (趙炳玉) 후보가 선거도중 사망하는 바람에 각각 70%와 1백%의 전무후무한 득표율로 당선됐다.

5~7대 선거는 여촌야도 현상이 두드러졌다.

박정희 (朴正熙) 후보는 윤보선 (尹潽善) 후보를 5대때 15만6천표차로 따돌려 대선사상 최소표차로 승리했으며 6대에선 1백16만표차로 이겼다.

김대중 (金大中) 후보와 맞붙은 7대때는 94만7천표차로 당선됐다.

6대선거때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지역감정은 7대때 심화됐고 13대 선거에서 극에 달했다.

7대선거때는 공화당의 3선개헌에 맞서 김대중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대항했지만 경남북에서 박정희후보에게 몰표를 안겨줬다.

노태우 (盧泰愚).김영삼 (金泳三).김대중.김종필 (金鍾泌) 후보의 '1노 (盧) 3김 (金)' 이 출전했던 13대 대선때는 지역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져 지역거점화 현상으로 이어졌다.

'황색바람' '녹색바람' 등의 용어가 등장한 것도 이때다.

13대선거에서 노태우후보가 대구.경북에서 각각 69.6%, 64.8%를 얻은 것을 비롯해 김영삼후보는 부산 (56%).경남 (51.3%)에서, 김대중후보는 전남 (87.9%).전북 (80.9%)에서 몰표를 얻었다.

김대중후보는 특히 광주에서 무려 94.4%를 얻었다.

김종필후보의 경우 다른 후보에 비해 견고성이 떨어지긴 했으나 충남에서 43.6%를 득표, 전국이 4분되는 지역선거 양상이 뚜렷했다.

지역감정의 회오리속에 전통적인 여촌야도 현상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반면 노태우후보가 야권 성향이 강한 경기.인천에서 야당후보들을 따돌리고 1위를 고수하고 서울에서도 김대중후보를 2%차이로 추격, 2위를 기록하는 변화를 보였다.

이는 수도권 유권자의 보수화에다 야권후보 단일화 실패로 야권표가 분산되고 이에 실망한 민심이 등돌린 때문으로 풀이됐다.

김영삼.김대중.정주영 (鄭周永) 후보가 각축을 벌인 14대 대선은 지역주의에 안정심리가 가세된 선거였다.

김영삼.김대중후보간 양金 대결은 지역대결 재현과 안정론 확산으로 김영삼후보가 1백93만표차로 낙승했다.

김대중후보는 광주 (95.1%).전남 (91.1%).전북 (88%)에서 몰표를 얻었으나 서울에서 김영삼후보를 불과 1.4%밖에 앞서지 못했다.

반면 김영삼후보는 영남지역의 득표만으로 호남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고 1백30만표를 앞서 승리를 결정지었다.

수도권의 보수화경향도 김영삼후보의 당선에 밑거름이 됐다.

선거막판에 터진 '부산 기관장 대책회의사건 (복국집 사건)' 이 반 (反) DJ심리를 자극해 차이를 더 벌어지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선거초반 영남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듯했던 정주영후보가 몰락한 것도 선거판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鄭후보는 부산.대구에서 각각 6.3%, 19.2%를 얻는데 그쳤다.

자신의 근거지로 여겼던 강원에서조차 33%를 얻어 김영삼후보보다 8%포인트 뒤졌다.

사표방지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여촌야도 현상이 깨진 것도 특징중 하나. 김영삼후보는 도시지역에서 42%를 득표한 반면 김대중후보는 32.6% 득표에 불과했다.

오히려 농촌지역에서는 김영삼 (40.5%).김대중 (35%) 후보간 격차가 줄어드는 기현상을 보여줬다.

한편 김대중후보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7, 13, 14대 선거에서 모두 최대 유권자를 가진 서울지역에서 한번도 1등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어 '서울 최강자' 위치를 굳게 지켰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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