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위기의 한국경제,관치탈피·개방만이 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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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약 1세기전 세계 열강들이 대한제국의 문호개방을 요구했을 때 성난 한성 (서울) 시민들은 당시의 개혁파 총리를 '친일파' 로 몰아붙인 적이 있었다.

그후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지만 한국의 차기 대통령도 똑같은 곤경에 처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한국이 절실하게 외화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 돈은 이익만을 냉철하게 추구하는 투자가들로부터 끌어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명백해진다.

한국은 투자가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것이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이 현재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간단하다.

지나치게 정부 의존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결코 '파산' 이란 단어가 존재할 수 없다.

천문학적인 부채가 가능했던 것은 기업이 정부의 도움으로 마음껏 '관영 금융기관' 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치료할 만병통치약은 없다.

IMF의 처방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직 한가지 모든 외국자본에 문을 활짝 여는 것 뿐이다.

외국 투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투자장벽을 걷어내야 한다.

재정회계를 공개함으로써 외국투자가들이 손익을 정확히 따져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상당수의 외국자본들이 한국내 투자가치를 아직도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가들의 투매열풍은 '비관론의 실패' 일 수 있다.

한국이라는 자산은 곧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재부상할 것이다" 라고 평가한 홍콩 시장분석가 마크 훼이버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투자가들에게 어디에 기회가 있는지, 기업경영 환경의 건전도는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 이는 한국이 현재의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IMF의 도움으로 한국이 단기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IMF의 관심은 오직 '채권자 보호' 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IMF의 지원은 고통을 연장시킬 수도 있다.

결국 한국은 스스로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최근 한국이 보여준 태도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지금은 분노와 자기 방어를 드러낼 때가 아니다.

한국의 새 지도자는 지지자를 선동하기에 앞서 반대자를 설득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지녀야 한다.

한국이 폐쇄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개방을 선택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이 결정이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사항이라는 점이다.

한국이 1세기 전으로 회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리 =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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