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기행]충청…누구찍을지 아직도 "글쎄유"…바닥기류는“바꿔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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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가부도의 찬바람은 대전.충남북 유권자에게도 예외없이 불고 있었다.

표정은 없었으며 말수는 많지 않았다.

10일 오후 청주시 흥덕구의 농수산물도매시장. 김장배추 매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50대 상인은 한숨부터 내쉰다.

"살기 어렵다고 김장도 안해 먹나. 손님들이 왜 이리 없느냐. " 담배 한대 빼문 그에게 불을 붙여주며 선거얘기를 꺼내자 의외로 순순히 자기 의견을 말했다.

"인자, 갈아쳐야 혀. " "누구로 갈아치운다는 말이죠. " "야당이지. " 그러나 구체적으로 지지후보의 이름이나 정당을 말하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날 밤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 서울에 본사를 둔 리스회사의 대전지점에서 3년간 근무한 30대 초반의 샐러리맨은 다른 말을 한다.

"김대중후보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다.

이인제후보의 경선 불복은 아무래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이회창후보가 요새 뜨고 있다. "

"뜨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글쎄…" 하면서 자신은 누구를 지지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무실 사람들이 '이회창 얘기' 를 많이 하길래 그 얘기를 전한 것뿐이라고 슬쩍 돌렸다.

다음날 논산 터미널에서 만난 전문대 남학생. "정치에 별 관심은 없지만 투표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는 그는 "이인제씨가 젊어서 좋다" 고 쾌활하게 답한다.

이인제후보의 고향인 논산과 그 주변에선 이인제.김대중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이 많았다.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의 출신지역인 부여는 'DJ바람의 진원지' 같았다.

젊은 사람을 보기 어려운 읍내 한 다방. 운좋게도 40~60대 남자들의 '선거토론'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아, 그래도 金총재 (김종필)가 와서 마지막이라고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나" "김대중이한테 속으면 어쪄" "이번엔 영삼 (김영삼) 이처럼 그렇겐 못할겨" …. 그들은 'DJP후보단일화' 에 크게 실망했지만 JP가 직접 고향을 왔다 간 뒤 '어쩔 수 없이 밀어줘야 한다' 는 분위기가 잡혔다고 말했다.

비슷한 분위기가 공주.보령.서천.서산 등 충남의 몇몇 지역에서도 감지됐다.

다시 충북. 청주대에서 사회과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충북의 민심을 몇마디로 압축했다.

"여촌야도 (與村野都) 는 옛말이다.

농촌의 파탄이 극에 달해 야당 분위기가 깔렸다.

충북 인구의 45%를 차지하는 청주권에선 여권표 결집과 갈아보자는 바닥민심이 부닥치고 있다" 라고.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는 충청도 사람들. 그러나 '거리민심' 은 "김대중이면 어때" 라며 전통적인 '반DJ정서' 가 상당히 가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주병덕 (朱炳德) 충북지사, 대전.충남 시.도의원들의 잇따른 한나라당 입당은 '여론주도층' 이나 '범여권' 의 시선이 어디로 쏠리고 있는지를 상징하고 있다.

바닥민심과 중상계층간 '힘겨루기' 가 치열히 벌어지는 충청권 표심 (票心) 이다.

전영기 기자·청주 = 권혁주 기자·대전 =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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