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길잡이]보편 주제에 관심 기울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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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지역 12개 대학이 98학년도 논술고사를 '고전적 주제' 에서 출제하겠다는 것은 시사적인 주제가 아니라 '보편적이고 원칙적인 주제' 를 의미한다.

그러면 이같은 주제가 어떤 것일까. 최근 각 대학들이 모의 논술고사로 출제한 근대적 이성, 형식과 내용, 지식에서 경험과 이성의 관계, 정부와 개인의 자유와의 관계,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관계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주제들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자연.사회.인간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본 범주들이다.

이 가운데 최근 학계에서 많이 논의되는 주제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비록 고전적 주제에서 출제하더라도 현재의 이론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에 관한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이후에 등장한 전통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 (권리) 와 함께 책임 (의무) 을 부과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의 통합에 위협을 가하는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다.

그러나 국가간, 개인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어떤 공동체의 존립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국가중심주의가 쇠퇴하는 대신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공익의 중요성이 약화되는 대신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 된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이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새로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시도이다.

다시 말해 점차 해체돼가고 있는 공동체를 어떻게 새롭게 형성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개인과 공동체에 관한 원칙적인 논의들을 학습해 둘 필요가 있다.

개인과 공동체를 직접 다루지는 않더라도 관련 주제가 출제될 수도 있다.

'자유와 평등의 관계' 도 그 중에 하나다.

평등이 사회적 공익의 관점을 우선하는 것이라면 자유가 개인의 이익을 중시한다.

따라서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는 자유와 평등의 관계로 변형돼 출제될 수도 있다.

또 '보편타당한 윤리의 가능성' 을 묻거나 '문화적 보편주의가 성립할 수 있는가' 를 묻는 것도 출제될 수 있다.

보편타당한 가치나 문화의 가능성을 통해 해체되고 있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탐색하자는 것이다.

서울대 고교장추천전형에서 출제된 정부와 개인의 자유의 관계,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다룬 서강대 모의 논술고사가 넓게는 이에 해당한다.

또 다른 주제는 근대적 이성주의에 관한 논의다.

근대적 이성주의란 이성을 통해 자연을 합법칙적으로 인식, 지배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조화로운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르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서양의 과학주의 전통은 발전의 한계.환경문제.관료주의 등 위기화 현상에서 나타나듯 도전을 맞고 있다.

이에 대해 서양의 이성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학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이성 = 과학과 관련한 전통적 주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이 과연 인간을 노동의 고통으로부터 해방할 것인가' '이성과 과학이 새로운 문명적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가' 등도 이런 범주에 포함되는 문제들이다.

특히 반이성주의, 반과학주의 경향으로 나타난 신비주의 혹은 동양사상의 가능성과 한계를 묻는 것도 이와 연관된 주제들이며 97학년도에 서강대가 출제한 종교.예술과 과학의 관계도 출제될만한 고전적인 주제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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