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모른다] 아내의 모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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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난 행운아다. 대한민국에서 아침밥을 얻어먹고 다니는 몇 안 되는 남편이니까.
아내가 차려 주는 아침을 먹기 시작한 건 얼마 전, 그러니까 큰 녀석이 휴학하고 빵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다. 물론 아들 덕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아내가 차려 주는 밥을 매일 아침 먹는 남편이다.

그 아침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아들놈은 모른다. 그러니 아내가 정성 들여 차린 식탁 앞에서 연신 하품이나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밥보다 피자 같은 걸 더 좋아하는 식성 탓도 있고, 심야형 인간이 새벽같이 일어나려니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습성 탓도 있으리라. 그래도 그렇지. 맞은편에 앉아 갈비를 권하는 내 아내의 모성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짜증을 부려서는 안 된다.

“엄마 때문에 배가 아직도 더부룩하단 말예요.”
어제 밤늦게 아들놈은 과식했다.
나는 어제 일찍 퇴근할 생각으로 사무실에서 저녁을 먹지 않았는데 일하다 보니 아홉 시가 다 되어 회사를 나섰다. 회사는 강남이고 집은 안양이라 집에 도착한 시간이 열 시가 넘었다.

이웃이 잠들 시간에 저녁도 안 먹고 들어와 부엌에서 얼쩡거리는 남편은 아내를 불편하게 만든다.
“지금 몇 신데… 아직 밥도 안 먹고 다녀요?”
“내가 차려 먹을 게.”
“지금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나는 아내가 지청구와 함께 내놓는 밥과 국으로 다급한 허기를 달랜다. 늦은 저녁을 다 먹어 갈 때쯤 아들놈이 들어온다. 아내가 묻는다.

“저녁은?”
“대충 먹었어요.”
“대충 먹어서 되니? 한창 클 나이에.”

아들의 의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내는 밥을 푼다. 그리고 갈비를 낸다.
그 갈비가 아침 반찬으로 나온 걸 보면 어제 아들은 갈비를 다 먹지 않은 모양이다. 아침에도 아들놈의 젓가락은 갈비 쪽으로 가지 않는다. 나는 아들놈 몫까지 싹싹 비운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이게 또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호강이다.

아들 주려고 내놓은 갈비를 싹 먹어 치우는 눈치 없는 남편을 아내의 모성이 바라본다. 모성은 여성보다 강하다. 모성은 언제나 한없이 너그럽고 큰 사랑이다. 나는 가끔 아내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의 엄마랑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의 엄마와 사는 남편은 출근하기 위해 현관에서 구두를 신는다. 그때 남편은 발견한다. 어제 퇴근할 때 허겁지겁 벗어 놓은 구두가 앞으로 돌려져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그러고 보니 내 구두가 이렇게 놓여 있었던 게 꽤 오래전부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행운아다.

글 김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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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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