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너진 경제 되살리자…관치금융 벗어날 기회 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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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제통화기금 (IMF) 과의 마지막 협상내용중 가장 진통이 컸던 부분은 역시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이었다.

결과는 최악의 형태로 나타났다.

종합금융사가 9개나 업무정지를 받았고 시중은행도 정리대상에 포함될 것 같다.

한마디로 타율적으로 조정이 불가피할 줄은 알았지만 결과가 너무 엄청나 망연자실 (茫然自失) 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면 냉정히 사태를 봐야 한다.

IMF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은 이미 때가 늦었고 소용도 없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 으레 교과서식 처방전이 뒤따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새삼스럽게 심하다고 말해 봐야 사태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이런 태풍이 밀려올 것을 예상하고 대비했어야 했는데 미처 못한 것을 탓하고 지금이라도 사태수습에 만전을 기하는 수밖에 없다.

먼저 처리대상으로 떠오른 9개 종금사의 뒤처리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깔끔하게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자금을 예탁한 고객과 관련 금융기관에의 여파를 줄이기 위해 당초 정부 약속대로 고객예탁금과 기업어음 (CP)에 대한 사후보증을 다시 한번 확인해 불필요한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관련 종금사의 자구계획에 바탕을 두고 인수.합병 희망기업이 있으면 시장에서 처리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이번에 외국 금융기관에 의한 인수 등 조기개방을 약속한 바 있기 때문에 외국기업의 진출을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다.

외국 금융기관에 의한 국내 금융기관 인수는 매우 예민한 문제지만 어차피 국경없는 경쟁을 해야 할 상황에서 경쟁 자체를 회피해 봐야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적극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정부가 신경써야 할 부분이 당장 9개 종금사의 정리 과정에서 상당한 인력이 방출되고 시중은행까지 가세한다면 더욱 심각해질 고용문제다.

방출될 인력 모두에 대해 정부가 대책을 세워줄 수는 없다 해도 단기간의 고통을 덜어줄 대책은 준비해야 한다.

이 모든 고통이 우리가 먼저 국내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기르는 대비를 못한데 기인한다.

아직도 정부나 정치권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지엽말단적인 영역다툼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IMF에 의한 타율조정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차제에 관치금융에 일대 전환기가 마련된다면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의 고통이 결코 헛된 경험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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