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한파]'종금사 영업정지' 무얼 뜻하나(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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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개 종금사에 대한 전격적인 영업정지는 부실금융기관의 정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국내금융계에서 불문율로 통하던 '금융기관 도산 불가 (不可)' 의 신화가 무너지고 '부실금융기관은 언제든지 문닫을 수 있다' 는 냉엄한 논리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번 영업정지 조치로 해당 종금사가 당장 간판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영업중단 상태에서 사실상 자력으로 회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당 종금사 가운데 일부는 대규모 증자와 합병등을 통해 회생을 모색하고 있으나 나락으로 떨어진 신용과 수신 기반의 붕괴등 영업중단에서 오는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금융시장의 혼란과 경제전반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해 금융기관의 도산과 청산 정리만큼은 극구 피해왔다.

국제통화기금 (IMF) 과의 협상에서도 부실금융기관의 정리문제는 막판까지 논란이 됐던 대목이다.

그러나 부실금융기관의 과감한 정리를 요구하는 IMF측의 요구가 워낙 거센데다 하루가 아쉬운 정부로서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IMF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특히 일부 부실은행의 폐쇄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그보다 영향이 덜한 부실종금사의 정리를 미룰 명분도 없었다.

결국 협상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종금사 영업정지를 단행한 것은 IMF에 대한 정부측의 '성의표시' 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종금사의 영업정지가 끝이 아니라 부실정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당장 오는 8일부터 시작되는 전체 종금사에 대한 실사 (實査)가 끝나면 종금업계는 또 한차례 부실정리의 회오리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로 예정됐던 실사작업이 앞당겨짐에 따라 여기서 드러나는 부실종금사의 처리도 그만큼 발빠르게 진행될 것이란 얘기다.

부실정리의 태풍은 종금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IMF 협상과정에서 은행권의 부실정리는 일단 뒤로 미뤄졌지만 내년 3월에는 은행권의 부실조사가 개시되고 그다음에는 증권.보험등 다른 금융기관들의 차례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금융산업 전체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정리작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금융권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벌어질 것이다.

증자와 합병, 외국금융기관과의 합작등 금융기관간 이합집산과 짝짓기가 본격화할 것이란 얘기다.

예금주들도 자신이 예금한 금융기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 금융기관별 차별화가 급속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부실종금사의 영업정지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너무 급작스럽다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다.

우선 예금인출의 동결은 선의의 예금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줬다.

앞으로 신용관리기금을 통해 예금을 전액 지급해준다고는 하지만 당장 돈을 꺼내쓸 수 없는데 따른 예금주들의 불편과 손해는 만만치 않다.

일반 예금자들이 예금을 전액 지급보증한다는 정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않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해당 종금사에서 자금을 빌려쓰던 기업들도 조만간 자금압박을 받게 됐다.

신규자금을 얻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기존 대출금도 자칫하면 회수당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의 자금사정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영업정지의 기준이 모호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아무리 부실해졌다고는 하지만 금융기관의 문을 닫으면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다보니 당하는 입장에선 억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재정경제원의 설명도 명쾌하지 않다.

금융권에서는 앞으로 부실금융기관의 정리를 원만히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분명한 선별기준의 제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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