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한파]칼자루 쥔 미국 작심하고 강공(1)…대기업 차입경영 축소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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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통화기금 (IMF) 과의 협상이 IMF측의 잇따른 추가 요구로 마지막 고비에서 난항을 겪었다.

정부는 2일 새벽 막바지 협상을 마무리하고 이날 오전8시30분 국무회의에서 '양해각서' 를 의결할 예정이었으나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가 또다시 타결 사실을 번복, 의결 자체가 유보됐다.

林부총리는 국무회의 전에 말레이시아에 있는 미셸 캉드쉬 IMF총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새로운 요구를 받고 부랴부랴 유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캉드쉬 총재는 기업 차입경영의 축소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캉드쉬 총재가 지난 1일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재벌을 들고나선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대기업 문제와 관련, 정부와 IMF는 당초 양해각서에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대기업 계열사의 상호보증 위험성을 낮춘다는 원칙적인 내용을 포함시킬 방침이었다.

이에 따라 2일 다시 정부와 IMF 협의단은 서울 힐튼호텔에서 협상을 속개했다.

정부 소식통은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해도 기업의 차입경영이 지속되는 한 부실금융기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게 IMF의 생각" 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내년 3월말까지 자기자본의 1백% 이내로 줄이도록 돼있는 대기업의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을 더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단기채시장 개방등 금융시장 조기 개방도 최후까지 남았던 쟁점이다.

정부는 3년미만 회사채나 국공채.기업어음 (CP) 등을 개방할 경우 핫머니 (국제 단기 유동성자금) 의 유.출입이 극심해져 외환시장의 혼란이 커질 것을 우려, 반대했다.

그러나 IMF의 개방요구가 워낙 강력해 결국 조기 개방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대기업에 대한 외국인들의 적대적 인수.합병 (M&A) 도 조기 허용하는 쪽으로 얘기가 되고 있다.

부실 은행의 정리 문제도 불씨가 남아있다.

재경원 고위관계자는 "9개 부실 종금사의 영업정지로 부실 금융기관 문제는 일단락됐다" 며 "부실 은행 문제는 당초 정부가 발표한대로 3월말까지 실사한 뒤 처리하기로 했다" 고 말했다.

아무튼 협상은 IMF의 요구대로 거의 결론이 나는 분위기다.

IMF의 요구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강했고 돈이 궁한 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같다.

특히 정부는 IMF의 강성 분위기를 미처 예상치 못해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재경원 고위관계자는 "11월에 마련한 우리 금융대책이 강도가 세기 때문에 IMF가 양해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고 밝혀 정부가 사태를 얼마나 오판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IMF 뒤에 미국이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같다.

IMF의 최대 주주인 미국은 칼자루를 쥔 참에 가능한한 모든 것을 받아내겠다는 전략으로 나왔고, 이는 사실상 거의 수용됐다.

고현곤.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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