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봉씨 2년만의 개인전 '사라짐'…우울한 환상세계 형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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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아무리 보려고 눈을 크게 떠도 정작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현실. 안개에 뒤덮인듯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우리의 미래를 말하려는듯 이기봉의 작업은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다.

국제화랑에서 24일까지 계속되는 이기봉씨의 2년만의 개인전 '사라짐' 은 작업의 난해함 그 자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02 - 735 - 8449. 알려고 할수록 더욱 잡히지 않는다.

땅위의 현실이 아니라 물속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이 바로 작가의 의도이다.

아크릴화 평면작업은 마치 아주 치밀한 연필 데생을 보는듯하지만 형상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고독한 두 영혼은 달콤한 사랑을 한다' , 혹은 '나는 당신을 모른다' 는 개념적인 제목을 붙인 설치작업도 선명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사라짐' 이라는 명제에 모두 충실한 때문이다.

작업들이 지극히 일상적인 형태를 띠면서도 현실을 벗어난 것같은 불투명하고 파편적인 인상을 주는 것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파괴해온 자연 때문에 다시 갈등을 겪는 인간의 딜레마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현실의 불분명함을 보여주려는 그의 분명한 생각을 보여주는 작업이 '사라짐 - 물고기 잉크' 란 설치작업. 살아있는 물고기를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어온 작품이다.

깨끗한 물속이 아니라 마치 비온 뒤의 뿌연 연못 속처럼 유리 상자를 혼탁한 물로 채워 물고기의 형상이 제대로 잘 보이지 않게 한데서 실체와 가려짐의 불투명한 관계를 감지해낼 수 있다.

반투명의 아크릴, 더러운 물, 내용을 알 수 없는 바닥에 가득 쓴 난해한 텍스트. 이 모두 문명의 위기를 아주 서정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들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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