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게임 국내에 '한국타이틀전' 열려…4대통신망 동호인중심 맹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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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10년 후의 TV 중계방송을 상상해보자. "한국 김막동 선수의 커맨드윙이 미국 스미스 선수의 우주정거장을 마구 파괴하고 있습니다.

스미스 선수의 포인트가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마침내 김막동 선수의 승립니다.

김선수가 드디어 아케이드 부문 컴퓨터게임 세계 챔피언에 오르는 순간입니다아 - ." 어쩌면 이 가상이 현실로 다가오는데는 10년이 안 걸릴지 모른다.

이미 미국에는 프로게이머리그 (PGL)가 창설됐다.

오는 6일부터 총상금 25만달러를 걸고 첫 시즌에 돌입한다.

1차대회 우승자는 상금 7천5백달러 (약 7백50만원) 와 3천5백달러 상당의 부상을 받게 된다.

현재는 반도체 업체 AMD사와 인터넷 게임용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TEN사가 주관하고 있으나 시장성을 인정받아 스폰서가 늘어난다면 대회 규모는 급속히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신종 프로스포츠로 떠오르는 컴퓨터 게임계에서도 백만장자 스타선수의 탄생은 시간문제인 셈. 우리나라에서도 게임대회는 간간이 열리고 있다.

대개 새로 출시된 소프트웨어를 홍보하기 위한 일회용 행사 수준이다.

게임 유통업체에서 소규모로 진행하는 정도니 당연한 일이다.

몇년 전에는 주최측이 참가비만 챙겨 달아나는 신종 사기사건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다크레인 모뎀플레이 대회' 가 그것. 이번 역시 LG소프트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다크레인' 을 알리기 위한 행사라는 한계는 있었다.

하지만 국내 4대 통신망인 나우누리.유니텔.천리안.하이텔의 게임동호인들이 참여해 자웅을 겨뤘다는 점에서 '한국타이틀전' 으로 평가할 만했다.

또 1등 상품이 PC와 PCS 단말기였고 만화 케이블TV '투니버스' 에서 후원과 중계방송까지 해줘 모양새도 갖췄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가 갖는 중요성은 공인 받은 실력자들이 참가했다는 점이다.

본선에 참여한 16명은 각 통신사 컴퓨터게임 관련 동호회에서 열린 예선을 거쳐 출전한 '대표선수' 들. 하이텔 게임동호회 '개오동' 대표로 참가한 이우영 (25) 씨의 말. "전문잡지에 이 게임의 공략법을 기고한 적 있으니 잘하는 편이죠. 앞으로 게임개발이나 관련기획 일을 하고 싶은데…. 한국타이틀을 건 정규 게임리그가 창설된다면요?

당연히 선수로 뛰어야죠. " 이씨 같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그처럼 게임실력은 물론이고 분석과 비평에도 능한 사람을 '게이머' 라고 부른다.

동료들로부터 '진정한 게이머' 로 불리는 월간 게임라인 편집팀장 성용 (24) 씨가 말하는 게이머의 세계는 이렇다.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면 밤새도록 그 해법을 고민하죠. 친구들과도 술을 마시기 보다는 오락실에서 게임으로 나누는 무언의 대화를 더 즐기고요. " 게이머들에게는 그들끼리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도 (道)가 있다.

일본서 컴퓨터 게임 그래픽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재혁 (26) 씨는 "오락실에서 격투게임을 하다보면 이기기 위해 지저분한 기술을 사용해 상대방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상대와는 게임을 하지 않죠" 라고 말한다.

스포츠에서 말하는 '페어플레이 정신' 그것이다.

한국 게이머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층도 꽤 두텁다.

외국에서 막 출시된 게임일지라도 금세 효과적인 공략법을 찾아낸다.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 게임에서도 외국 매니어들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

한국 선수가 당장 PGL에 진출해도 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실력있는 프로급 선수가 충분하니 제대로 멍석만 깔아준다면 세계적 게이머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긴 컴퓨터 게임 하나로 세계를 제패해 박찬호처럼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나 뭐.

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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