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복교수 사건 학계반응…'진보는 친북한' 매도 분위기 경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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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안기부의 고영복 교수 간첩사건 발표 이후 학계는 큰 충격에 쌓여있다.

이미 소문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던 학자들도 그가 36년간이나 고정간첩이었다는 당국의 발표에 당혹해하고 있다.

이 사실을 처음 접한 주변 교수들은 그의 사회적.학문적 성향으로 보아 "앞뒤가 안 맞는다" 는 반응들. 고교수의 학문적 태도는 사회심리학적 분석과 실증적 연구를 통해 한국의 근대화.도시화 이후 각 계층.직업별 태도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등 최근까지도 철저히 보수적 기조를 유지했다.

이런 경력 때문에 "배신감을 느낀다" 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과거처럼 학계 전체가 뒤숭숭한 정도는 아니다.

고려대의 한 교수 (정치학) 는 "보수적인 사람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건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담담했다" 면서 "이같은 사태에도 학계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기 때문" 이라고 진단했다.

고교수를 동정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안됐다" 는 분위기를 전하면서 "고집스럽고 정을 주지 않은 개인적 태도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것 같다" 고 분석했다.

하지만 많은 교수들이 "그 정도 위치의 사람이 안일하게 판단한 것 자체가 문제" 라고 지적했다.

학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학문공동체가 위축되는 것. 특히 사회학계의 경우 68년 황성모 교수의 민비연 사건, 71년 서승씨의 재일교포 간첩사건에 이은 사건이어서 70년대 이후 가장 활발한 학문영역이었던 사회학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나아가 '진보 = 친북한' 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에 대해서 경계했다.

한 소장교수는 "이번 사건은 오히려 남쪽의 우익과 북한의 존립 사이에 내적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창호 학술전문 기자 황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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