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패밀리는 건드리지 말자” 박연차 구명운동 나섰던 노건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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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67·사진)씨는 지난해 9월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만났다. 그는 추 전 비서관에게 “서로 대통령 패밀리까지는 건드리지 않도록 하자. 우리 쪽 패밀리에는 박연차씨도 포함시켜 달라”며 박 회장의 선처를 부탁했다고 한다. 추 전 비서관은 노씨로부터 이 같은 제안을 받자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한나라당의 모 의원을 찾아갔다. 추 전 비서관은 모 의원에게 노씨의 언급을 전하며 “민정수석이나 검찰 쪽에 노씨의 얘기를 전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민정수석이나 검찰에 노씨의 발언이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 ‘봉하대군’으로 불렸던 노씨가 동생의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코자 한 것이다.

노씨가 현실 정치에 개입한 것은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2004년 5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6월 5일 치러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를 앞두고서다. 노씨는 박 회장에게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였던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을 지칭한 뒤 “마음 크게 먹고 한번 도와주라”고 말했다. 이후 박 회장은 8억원을 장 후보 측에 줬다. 노씨는 장 전 차관이 경남도 부지사로 있을 때 알게 됐다. “장 부지사가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격려해 주겠다’며 노씨가 먼저 그를 찾아갔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노씨는 이듬해 4월 30일 실시된 김해갑 재선거 때도 개입했다. 김해갑에 출마한 이정욱(전 해양수산개발원장) 열린우리당 후보를 위해 뛰었다. 박 회장에게서 받은 5억원을 전달했다. 이 지역의 다른 기업인으로부터 2억원을 받아 이 후보에게 줬다. 이보다 앞서 열린우리당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관여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열린우리당 경남도당 측에 박 회장의 딸을 공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도당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김정권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열린우리당으로 영입하기 위해 지인을 보내거나 “한번 보자”며 전화를 걸기도 했다고 한다. 선거 때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나 사무소 개소식 때 내빈 자격으로 갔다. 직접 참석하지 못하면 축하 화분도 보냈다고 한다. 2004년 3월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했던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주장과는 상반된 행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노건평씨가 동생의 지위를 이용해 ‘대군(大君)’의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철재·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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