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53>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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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호 16면

“내 밑으로 다 집합. 요즘 아이들은 도대체 선배도 없나. 당장 이리 모이지 못해!”

LPGA 왕언니 “다 집합”에 막내들은 “얍”

‘왕언니’가 집합을 걸었다. 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선수 가운데 일부 교포 선수를 제외하고 30여 명의 여자 골퍼가 한자리에 모였다. 당장 왕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희들, 인사 잘하고 다녀. 나는 물론 다른 선배들한테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골프만 잘 치면 다가 아니라고. 한국 사람이라면 예의를 알아야 할 것 아니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렸다. LPGA투어 대회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해 가을이었다.

이상은 LPGA투어의 왕언니가 필자에게 들려준 에피소드다. 지난주 LPGA투어 J골프 피닉스 인터내셔널 대회가 열린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를 찾았다. 10대 후반의 최운정(19)부터 30대 중반의 정일미(37)·강수연(33)에 이르기까지 45명의 한국(계) 선수가 출전해 외국 선수들과 샷을 겨루는 현장이었다. 나이가 어린 선수는 대부분 선배를 만나면 깎듯이 인사를 했다. 간혹 그렇지 않은 선수도 있었다. 필자는 세대별로 선수들의 개성과 특징이 뚜렷하게 달라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대별 특징을 살펴보면-.

▶1세대=정일미·강수연·박세리(32)·김미현(32)·박지은(31)·한희원(31) 등은 LPGA투어에서 최고참급으로 통한다. 선후배 간에 위계질서가 뚜렷하다. LPGA투어를 개척한 선구자로서 실력도 뛰어나고, 자존심도 강한 세대.

“지난해 한 신인 선수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의 질문에 미국식으로 ‘얍(Yep)’이라고 대답했다가 곤욕을 치렀지요. 귀엽게 봐줄 수도 있지만 우리 때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요. 선배들이 말하는데 건방지게 ‘얍’이 뭐예요.”

▶2세대=장정(29)·김영(29)·안시현(25)·김주미(25) 등은 2세대로 분류된다. LPGA투어에서 선배와 후배의 가교 역할을 하는 허리 세대다. 1세대 언니들에 비해 카리스마가 약하고, 우승을 많이 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3세대 동생들의 도전도 막아내야 하는 낀세대. 그러나 선후배 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이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3세대=신지애(21)·김인경(21)·김송희(21)·박희영(22)·최나연(22) 등은 3세대다. 어린 나이에도 언니들 못지않게 실력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한 가지. 이들은 1, 2세대와 달리 선후배 간의 유대감이 약한 편이다. 한 고참 선수는 “3세대는 위계질서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것도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4세대=올해 LPGA투어에는 4세대 한국 선수가 등장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허미정(20)·박진영(20)·최운정(19) 등이 그들이다. 3세대 선수들의 자유발랄함에다 외국 선수 못지않은 하드웨어(체격)까지 더한 것이 4세대 선수들의 공통점이다. 허미정은 키가 1m75㎝나 되고, 박진영·최운정 등도 1m70㎝를 넘는다. LPGA 2부 투어를 거치며 경험까지 쌓았다. “언니들이 무척 잘해 준다. 언니들이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을 존경하지만 못 넘을 이유도 없다”는 게 4세대 선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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