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환율 변동폭 늘리면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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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부가 환율변동폭을 크게 넓힌 것은 종전의 좁은 밴드 (변동폭) 로는 외환시장이 제기능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달러가 모자라다보니 지난달말부터는 달러화 사자주문만 폭주하고 팔자주문은 종적을 감췄다.

매매주문이 체결되지 않은채 환율은 죽죽 올라 연일 제한폭에 부닥쳐 시장이 마비되는 현상이 이어졌다.

결국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시장 기능이 마비되고 만 것이다.

시장이 움직이지 않으니 기업.금융기관들은 돈이 있어도 달러를 사지 못하게 됐다.

이 때문에 지난달말부터 하루 환율변동폭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들이 강하게 제기됐다.

외환당국도 확대할 용의를 비춰왔다.

금융기관들은 4~6%정도로 예상했으나 훨씬 넓은 10%로 정해졌다.

재정경제원의 실무선에서는 이보다 더 넓히자는 의견도 있었다.

종전에는 환율이 아무리 올라도 그날짜 '기준환율의 2.25%' 란 차단막이 있었다.

그러나 20일부터는 기준환율인 달러당 1천35원50전보다 무려 1백3원55전이나 높은 달러당 1천1백39원5전까지도 오를 수 있다.

기존 제도라면 환율은 달러당 1천58원대까지 밖에 오르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기준환율이 달러당 1천원이 넘으면 하루 1백원이상 오르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환위험이 커진 셈이다.

이렇게 변동폭이 확대되면 일단 환율상승 압력을 완충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치 터질듯한 가마솥에서 김을 빼주듯이 외환시장에 꽉 차 있는 상승압력을 덜어준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지난 며칠처럼 환율이 상승제한폭까지 올라 시장이 완전 마비되는 일은 막을 수 있게 된다.

변동폭을 한꺼번에 넓혔기 때문에 가수요나 투기심리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은행 서울지점의 한 딜러는 "변동폭이 너무 넓어져 함부로 주문을 내기가 겁난다" 며 "투기보다는 신중하게 판단해 거래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또 외환당국도 환율방어를 위해 매일 외화를 쏟아부으면서 방어선을 후퇴하지 않고 적정수준까지 환율상승을 지켜보다 일시에 강력히 개입하는 전략을 쓸 수 있다.

그만큼 외환보유액을 덜 쓰고도 개입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달러화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환율이 더욱 성큼성큼 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외환당국도 단기적으로는 더 오를 것으로 점치고 있는 듯하다.

특히 환율폭등세의 천장이 어디냐에 대해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변동폭 확대가 환율안정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하겠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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