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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라이벌은 누구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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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한국의 고교야구는 50여 개 팀으로 구성돼 있다. 일본은 4500개가 넘는다. 비슷한 엘리트 선수들로 구성된 팀끼리 벌이는 대결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 순간에 힘의 우위가 결국 드러난다. 우리는 더 좋은 투수 한 명이, 더 좋은 타자 한 명이 부족했다. 1회 대회 때 한·일전도 그랬고, 2회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시스템과 지원 체계로 봤을 때 한국과 일본 야구가 동일선 상에서 라이벌로 불려지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에 있어 일본은 우리에게 라이벌이다. 객관적 여건상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음에도 일본과의 대결에서 패하면 열패감이 더 커진다. 모든 대결 구도엔 경쟁 상대가 필요하다. WBC에선 일본 팀의 이치로였다. ‘피겨 요정’ 김연아의 대항마는 주저없이 아사다 마오였다. WBC 준우승의 여운이 이어지면서 개인 대결 구도에서도 한·일전 코드가 효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경·평 축구의 유구한 전통이 녹아 있는 남북 축구 대결은 1-0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 봄 라이벌 이벤트 3제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라이벌이 있어 즐거웠고, 라이벌 덕분에 투지가 생겼다.

라이벌과의 싸움은 지평을 넓힌다. 김성근 감독의 라이벌은 누굴까. ‘거창하게도’ 메이저리그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여 있다는 그곳 말이다. 언젠가 한국 단일팀이 메이저리그에서 풀시즌으로 뛰는 날이 오길 기다린다고 한다. 김 감독은 “2002년 LG가 준우승할 때만 해도 내가 야구를 잘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 지바 롯데 코치로 부임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다. 세계 속의 야구를 보면서 ‘나는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7년 전 그의 라이벌은 김응용 당시 삼성 감독이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그물을 뚫고 밖으로 나갔고(일본행), 국내로 다시 돌아와 자신의 지평을 넓혔다.

프로야구 개막을 사흘 앞둔 1일, 김 감독은 새벽 3시에 잠들었다고 한다. 빽빽한 데이터를 살펴보며 걱정하다 취침 시간을 놓쳤다는 것이다. 개막을 앞두곤 늘 그렇다고 한다. SK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2년 연속 거둔 팀이다. 올해에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다. “아직도 야구에서 배워야 할 게 남아 있느냐”는 우문에 김성근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개막을 앞두고 데이터를 보는데 늘 새로워요. 10년 전 숫자와 지금 숫자의 의미가 달라요.” 당신의 라이벌은 누구인가.

김성원 일간스포츠 야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