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은 테마]종가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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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세상사가 그렇듯, 어느 분야의 연구든 공 (空) 으로 되는 일이 없다.

여러 종가 (宗家) 를 찾아다니는데, 추운 것은 참겠으나 더운 것은 참기 어려웠다.

대개 하루에 몇 차례 다니는 버스를 타고 가서 먼 곳은 십여리 걸어 들아가야 한다.

혼자서 호젓한 길을 걷는 것에는 늘 두려움이 따른다.

어른을 뵙는데 예를 갖추어 옷을 입고 가야 한다.

더운 김 오르는 길을 걷자면 속옷 사이로 겹겹이 땀이 흐른다.

여름날 땀을 씻지 못하는 것은 이미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참기 어렵다.

종가에 들어서면 보통은 사랑채에서 종손을 뵙는다.

"이 사랑에 여자분으로는 처음 들어오셨소" 라는 말씀이 의미하듯 그곳은 전혀다른 세계다.

종손이나 종부의 말씀을 알아듣기 어려웠던 것은 지방사투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개 한문이나 고문의 한 대목을 앞뒤 언급없이 말씀하신다.

과거 수백년전의 조상이 오늘 함께 살고 있듯이 조상의 생각과 행동을 뒤섞어 말씀하기도 한다.

그 말을 알아듣는데 수년이 걸렸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종부들의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이었다.

남존여비에 찌든 위상으로 그리고 있는 기존의 서적과 달리 내가 만난 종부들은 남성에 못지 않게 가문을 지키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확신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문의 종부, 적처 (嫡妻) 는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자신의 권한과 위엄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가 그것을 보호했다.

한국가족의 관계는 개인의 애정을 넘어선 존중 의무와 책임의 관계임을 확인하고서 비로소 현대가족의 원류를 이해할 수 있었다.

1980년경 사회학을 전공한 한 교수가 왜 종가를 찾느냐고 물었다.

당시는 종속이론이 풍미하던 때였다.

종가 연구는 말하자면 지배계층의 가문사 연구로, 종속이론에 비하면 한가로운 연구주제로 비쳤던 것이다.

그러나 종가 연구는 선비교육이 일제시대로 단절되고 왜곡되어진 오늘날 조선조의 아동교육과 가족생활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서 우리 문화의 원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되는 작업이다.

개인적으로는 일상성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을 찾는 기쁨도 종가를 연구하게 된 한 이유였다.

종손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로 말한다.

몇 대 (代) 를 이어가는 가문의 역사는 조상의 신념을 입증하는 것이다.

오늘날 말과 신념 바꾸기를 밥먹듯 하는 정치인들과는 격이 다르다.

개인이든 가문이든 민족이든 소중하게 여기는 신념을 수십년 수백년 지켜온 것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그 아름다운 흔적을 찾아 몇줄 섣부른 언어로 꿰고 있는 것이다.

이순형 교수<서울대·아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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