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이 흥미를 끄는 것은 가상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이라 이름할 수 있는 독특한 성질 때문이다.
사람들은 영화 '론머맨' 이나 '토탈 리콜' 등을 떠올리며 사이버 섹스와 전자마약에 중독된 새로운 의미의 '소외' 를 염려할 수도 있겠지만, 상상 가능한 모든 것을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것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상황에는 누구나 흥분하게 된다.
사실 리얼리티에 대한 성찰이 지난 2천5백년간 서양철학의 주제였음을 돌이켜 보면 '가상현실' 의 의미를 단시간에 파악하기는 어렵다.
단지 정보혁명으로 인해 세계의 구성요소를 물질이나 정신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던 전통적 시각이 더이상 설득력이 없음을 느끼고, 새로운 세계관과 인간관의 모색이 필요함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지적 소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문화에 대한 폭넓은 비평과 함께 전통철학에 나타난 가상현실의 단서들을 추적하는 저자의 작업은, 다소 현학적인 문체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이 주된 역할을 하는 새로운 디지털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여명숙<이화여대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