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경제위기의 탈출구는 탄탄한 기초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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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새 정부 들어 과학기술정책이 표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계가 이번 추가경정예산을 보면서 또다시 실망했다. 정부는 그동안 경제난국을 풀어갈 수 있는 근원적인 해결책은 과학기술, 특히 기초·원천 연구에 있다며 재정 투자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추경 뚜껑을 열어보니 기초·원천 연구비는 0.4%에 불과했다. 연구개발에 대한 배려가 전반적으로 줄어든 데다 기초보다는 단기적 성과 중심인 응용개발에 힘이 쏠려 있음이 추경에서 나타났다. 경제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지면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는 한층 오그라들 것이라는 과학계의 우려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이동통신회의(MWC) 2009’에서 국내 휴대전화 업체들이 태양광으로 충전할 수 있는 휴대전화를 선보였다. 태양광 휴대전화는 휴대전화에 태양광 패널을 부착해 햇빛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충전할 수 있는 제품이다.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태양광 휴대전화를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어 향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태양광 발전의 시작은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39년 프랑스 물리학자 베크렐은 전해질에 담근 전극 사이에서 재료들이 빛을 받으면 전류가 흐르는 광전효과를 발견했다. 이를 이용해 1883년 미국 발명가 프리츠가 첫 번째 대형 솔라셀을 개발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개념을 도입한 광전효과로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미국은 항공우주국(NASA)을 중심으로 태양광에 대한 기초연구를 지속적으로 한 결과 1958년 뱅가드 위성에 태양광발전 시스템을 탑재했다. 일본은 1974년부터 ‘선샤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부 주도의 태양광 발전 연구를 지원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달 18일 일본 정부는 태양광 발전을 경제성장의 새로운 원동력으로 삼는다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산업규모 143조원, 일자리 창출 11만 명을 목표로 세계시장을 확실히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전력 수요 1만6000기가와트 중 태양광 발전은 4기가와트에 불과하지만, 2020년 태양광 발전 시장 규모는 반도체 시장 규모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태양광 발전의 사례에서 보듯이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일상생활에 적용되기까지는 수십 년에 걸친 지속적인 기초연구가 그 기반을 이루고 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이 세계 기술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이유도 이미 오래전부터 기초연구에 투자해 왔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경기가 나빠진 요즘 기초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향후 10년간 연구개발(R&D) 예산을 두 배로 늘리고, 특히 젊은 연구자를 키우면서 기초연구를 강화하기로 했다. 그는 선거기간 중 미국 노벨상 수상자 61명의 공개 지지를 이끌어낼 정도로 기초연구에 대한 입장은 확고하다. 지난해 4명의 노벨상을 배출한 일본도 올해를 ‘기초과학력 강화의 해’로 선포했다. 기초과학 연구와 창조적인 인재육성을 통해 경쟁력의 기초를 쌓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휴대전화를 만들고도 원천기술이 없어 수조원의 로열티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이 지속돼선 안 된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정보·전자·통신, 에너지·자원, 나노·소재 등 364개 기술 중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기술을 단 1건도 못 갖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5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부는 글로벌 경쟁력이 기초연구에 달려 있음을 확실히 인식해 이제부터라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위한 기초연구 투자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노벨상도 이런 과정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민경찬 연세대 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