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자본회담 수락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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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이 4자회담 본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미국과의 본격적인 관계개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남.북한과 미.중은 그동안 두차례의 예비회담을 통해 본회담 개최에 대해 사실상의 의견접근을 이룬바 있다.

특히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2차 예비회담에서 한.미 정부가 "북한이 본회담을 수락할 경우 대규모 식량지원에 나서겠다" 고 약속함에 따라 본회담 개최를 둘러싼 쟁점은 이미 사라졌다.

북한은 그럼에도 "본회담 의제로 '주한미군 철수' 가 포함돼야 한다" 며 본회담 수락을 거부, 한.미 양국을 당황케 했다.

미측 수석대표인 찰스 카트먼 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는 북측이 2차 예비회담에서 계속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더이상의 예비회담은 무의미하다" 며 "본회담 수락여부를 확실히 정한 뒤 알려달라" 고 최종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 이번에 제안한 본회담 일정은 예비회담때 이미 정리된 내용이라는 점등으로 미뤄 발표시기를 '김정일 (金正日) 권력승계 이후' 로 늦췄을 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본회담 의제와 관련해 "다양한 방안을 수용할 수 있다" 고 밝혀 그동안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단순한 '본회담 수락시기 조절용' 카드였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대북 쌀지원을 명시적으로 보장하라는 그동안의 주장도 사실상 철회했다.

2차 예비회담 과정을 통해 쌀지원에 대해 나름대로의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신 미국과의 본격적인 관계개선을 희망했고 미측은 이에 대해 긍정적 답변을 보냈다.

오는 29일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4자회담과 한반도 문제가 심도있게 거론될 예정이라고 한다.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북한은 4자회담을 징검다리로 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김정일의 첫번째 외교실험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를 바탕으로 내년 초부터는 본격적인 대일 (對日) 수교교섭에 나설 것이 예상된다.

물론 남아있는 실무차원의 이견이 모두 해소돼 본회담이 오는 12월 개최된다 해도 당장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본회담 개최와 함께 북.미 관계개선과 북.일 수교교섭이 본격화될 경우 한반도 주변의 외교격랑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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