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뿌리 내리려는 나무가 되지 마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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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14면

청화 스님1962년 시가 쓰고 싶어 출가를 했다. 당시 그의 봇짐에는 김소월의 시집이 담겨 있었다. 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시조로 등단했다. 86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 92년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참여연대 공동대표, 정릉 청암사 주지를 맡고 있다. 개혁적 소신과 인품으로 조계종단에서 신망이 두텁다.

불교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靑和ㆍ66) 스님은 ‘운동권 스님’으로 통했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에, 90년대에는 종단 개혁에 몸을 던졌다. 지금은 참여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그가 최근 시집을 냈다. 제목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월간문학)다.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지 31년 만에 내는 첫 시집이다. 청화 스님은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 한 번도 시(詩)를 놓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일 서울 견지동 총무원 청사에서 청화 스님을 만났다. 그는 “80년대부터 나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삶은 못 살았다”며 가슴속에 담아둔 시(詩)와 수행을 말했다.

영혼을 울린 한 구절-불교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 스님

-수행자로서 ‘가슴에 꽂고 사는 한 구절’은 뭔가.
“『법구경』에 나오는 ‘학선자정 연후정인’이다. 배움의 본질이 뭔가. 자기 자신을 바르게 세우는 거다. 그게 최우선이 돼야 한다. 어른이나 지도자라는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아랫사람을 훈계하고 가르치려고만 해선 안 된다.”

-어떤 게 자신을 바르게 세우는 건가.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의 기준’으로는 안 된다. 불교에선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는다. 거기에 나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

-부처는 팔만사천 법문을 설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른 마음을 지향하는 거다. 그런 지향의 결과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바른 마음이 없으면 모든 게 번뇌가 되고 만다. 그러니 부처님 가르침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바른 마음을 지향해라’다.”

청화 스님은 “시인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라며 외우던 시(詩)를 한 수 꺼냈다.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김광섭 시인의 ‘마음’ 중에서)스님은 “바람이 뭔가. 끊임없이 흔드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흔드는 유혹이 바로 바람이다. 또 구름은 뭔가. 먼 곳에 있다. 나와 상관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구름은 물에 그림자를 비춘다. 그렇게 내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마음은 그렇게 펄럭일 수 있고, 그렇게 물결칠 수 있다”고 말했다.

-청화 스님의 수행법은.
“주로 밤에 자아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구체적으로는 화두선을 한다. 밤에는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갖기에 집중력이 배가 된다.”

이 말끝에 스님은 ‘가을 산’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해인가 혼자서 가을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다가 말라 죽은 소나무를 봤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끝내 말라 죽은 나무였다. 마음이 징하게 울리더라.”

-왜 마음이 울렸나.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겠나. 인간의 고해스러운 삶이 소나무와 같더라.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욕망을 좇으며 산다. 그런데 그런 맹목적인 삶의 의지가 바위에 뿌리를 내리려던 소나무와 무엇이 다른가.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는 삶은 그 소나무와 같은 거다.”

스님은 “물질이란 눈에 보이는 거다. 보이는 것만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게 된다. 지금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를 고민할 시점이다”고 말했다.

-수행자에게 왜 시가 필요한가.
“수행과 시는 내게 수레의 두 바퀴다. 수행에 전념하다 보면 메마르고 공허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시심(詩心)이 적셔 준다. 너무 마르면 촉촉하게, 또 너무 질퍽하면 단단하게 말려 준다. 그게 수행과 시라는 두 바퀴다.”

-이달 말이면 교육원장 소임을 마친다. 초야로 돌아가는 심정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90년대 종단 개혁 등 외연적인 일에 매달렸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시간은 못 가졌다. 그동안 목말랐다. 빨리 제도권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젠 초야에서 정진도 하고, 창작도 하고, 책도 읽으며 지내고 싶다.”
그는 조계종 최초로 5년 임기를 다 채우는 교육원장이다.


중앙일보 문화부 종교 담당 기자. 종교는 박제가 아닌 생명이어야 함을 믿는다. 중앙일보 종교면에 칼럼 『현문우답』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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