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DJ비자금 수사유보를 발표한지 수시간이 지난 21일 오후 여의도 부국빌딩. 신한국당 이회창총재 후원회사무실에서 李총재와 핵심측근 10여명이 긴급회동했다.
李총재는 22일 오전 긴급기자회견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밤늦게까지 시내 모처에서 몇몇 측근들과 성명문안을 가다듬었다.
한 측근은 "김영삼대통령에 대해 강한 문제제기가 있을 것" 이라고 귀띔했다.
李총재측은 검찰입장이 하룻밤 새 뒤바뀌었고 여당 대통령후보의 국회연설 도중 검찰총장이 재를 뿌리는 발표를 한 점등에 주목했다.
뭔가 급박한 사정이 있으리라는 지적이다.
핵심들은 검찰총장의 결정은 金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고 그러므로 그 긴박한 사정은 金대통령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을 표시했다.
한 측근의원은 "국민의 60~70% 이상이 바라는 검찰수사를 그런 식으로 덮어버린데는 무슨 사정이 틀림없이 있을 것" 이라며 "여러 설이 있으며 분위기가 이상하다" 고 목소리를 깔았다.
李총재진영은 사정이 무엇이든 李총재에게 찬물이 끼얹어진 것은 적어도 金대통령이 李총재의 운명에 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보고 있다.
李총재는 이 위기에서 자신의 정체성 (正體性) 을 회복할 수 있다는 각오도 다지고 있다고 한다.
즉 이제는 더이상 YS에게 연연하지 않고 독자적이고 뚜렷한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李총재는 金대통령 - 김대중총재 - 검찰의 '비자금덮기' 를 구정치의 마지막 연대로 규정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한 새 정치세력의 확장을 추진하는 명분으로 활용할 생각도 갖고 있다.
한 측근의원은 "李총재로서는 이제 죽기 아니면 살기의 선택만 남았다.
차제에 구정치 청산의 깃대를 더욱 꽉 쥐고 후보교체론도 분쇄하면서 전진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李총재가 金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어떤 속도와 강도로 진행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는 측근들과는 달리 검찰수사 유보에 대한 金대통령의 책임과 관련성을 공격하는데 더 신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큰 방향이 그의 독자적 전진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