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총재 비자금 수사유보 김영삼대통령 지시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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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와대는 검찰의 수사유보 결정에 대해 "사전 의논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공식 반응은 이렇지만 내부 분위기는 정반대다.

김태정 (金泰政) 검찰총장의 독자결정론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의중이 적극 반영됐다고 보는 사람이 오히려 대다수다.

수사유보 결정이 이회창 (李會昌) 신한국당후보에게 상상키 어려운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검찰을 돌연 뒤로 빠지게 한데는 김대통령의 영향력이 결정적이라는게 정설이다.

김대통령은 최근 신한국당의 L씨를 비롯, 전직총리 K씨. 또다른 원로인사 K씨 등을 잇따라 만나면서 이회창후보의 한계를 재확인하고 뭔가 대안을 찾으려 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러나 그 정도를 갖고 김대통령이 수사유보를 결심한 것같지는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대통령이 김대중 국민회의총재쪽으로부터 도저히 거부키 어려운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 더 확실한 이유로 지적된다.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김대중총재는 두가지 카드를 들고 청와대를 결정적으로 꼼짝 못하게 했다고 한다.

첫째는 92년 대선자금 관련 자료다.

국민회의측이 확보하고 있는 92년 대선자료는 당시 여당 대선자금이 어떻게 확보돼 어떻게 쓰였느냐는 것이다.

이 자료는 당시 안기부 기조실장이 제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회의는 이 자료를 들고 당 고위인사인 L씨를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보내 결정적 담판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민회의는 'DJ 소환' 상황이 되면 선거 거부운동이 일어나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김대통령과 김대중총재가 공멸할 수 있다는 국민회의쪽의 최후통첩에 김대통령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김대통령은 수사강행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차제에 자신의 92년 대선자금 문제를 털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총재의 비자금과 함께 자신의 문제도 덮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야당의 반발, 선거관리의 어려움에다 경제 혼선, 전통적인 여당 지지 유권자의 불만등 김대통령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검찰의 방향선회를 유도했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어쨌든 김대통령은 상당히 급박하게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인다.

18일 조홍래 (趙洪來) 정무수석은 92년 자금문제로 金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 이회창 신한국당총재를 비난했는데 이것이 방향 선회의 신호였다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최종 결심시기는 20일 저녁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20일 밤 김종구 (金鍾求) 법무장관.김태정총장은 청와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각자 저녁행사를 갖고 있었다.

때문에 결정이 극비리에 이뤄졌으며 청와대 참모들이 중간에 개입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일각에는 수사중단으로 김대통령이 이회창총재를 '불신임' 했다는 관측도 있다.

김대통령이 비자금 파문을 이렇게 매듭짓는 것은 결국 후보교체론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이는 이총재를 곧바로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수가 낮은 것이다.

때문에 김대통령의 도박인지, 용단인지 아직 가리기는 어려운 대목이 너무 많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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