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미국 통상압력 극복위해선 치밀한 장기전략 세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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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의 한국자동차시장에 대한 슈퍼301조하의 우선협상대상국관행 (PECP) 지정과 관련, 국내의 반응은 비난 일색이다.

물론 이번의 슈퍼301조 발동은 우리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미국이 분명 한국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음에도 굳이 자동차 분야에서 슈퍼301조 발동을 감행하게 된 데 대해 여러 원인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쪽에 있을 것으로 본다.

첫째, 미국의 통상정책이 과거의 수동적 수입규제 위주에서 이제는 공격적 수출확대 정책으로 전환된 것을 들 수 있겠다.

둘째로는 통상정책 결정과정에 다양한 이해집단이 관여해 정치적 고려가 우선될 수밖에 없는 미국의 풍토를 들어야겠다.

미국의 통상정책은 하급의 무역정책자문위원회, 중급의 무역정책검토위원회, 고급의 국가경제위원회의 3단계 검토과정을 밟으면서 단계가 올라갈수록 경제적 고려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셋째로는 우리가 그동안 미국과의 통상협상에서 보여준 태도도 영향을 미쳤음을 간과할 수 없다.

과거 포도주.쇠고기.담배협상에서 보듯이 미국이 슈퍼301조 발동을 공표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협상에서 많은 양보를 거듭해온 우리의 관행은 미국의 방자한 태도에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 (WTO) 제소등 이를 일거에 응징하려는 요즘의 언론이나 사회 각층의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가 지나친 흑백논리식.단세포적 대응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아직은 18개월이라는 쌍무적 협상기간이 있으니 협상을 해보는데까지 해보고 그 다음에 우리의 전략을 제시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데 공연히 양국관계만 악화시키는 것은 하등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 없지 않겠는가.

보이는 전략보다 은밀한 전략, 먼 장래를 보는 전략, 전체적 산업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전략을 통해 통상압력을 극복해 나가는 기법이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난처한 입장을 모면하기 위해 국가전체적 차원이 아닌 자동차산업에 국한해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당장 미국의 입맛은 맞춰 줄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게 될 유럽연합 (EU) 의 불만은 커지게 될 것이다.

최근 무역협회의 미국고문변호사는 한국에서의 슈퍼301조 관련 시위와 부정적 여론이 미 무역대표부로 하여금 '한.미자동차협상의 건설적 해결이 어렵다' 는 쪽으로 돌아서게 했다는 보고를 한 바 있다.

앞에서는 미소지으며 뒤통수를 치는 미국의 전략에 맞서는 길은 역시 우리도 마지막 순간까지 비장의 카드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진을 빼다가 마지못해 작은 것을 양보해 주는 것이 살벌한 통상환경에서 슬기롭게 살아나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신구식 <무역협회 국제통상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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