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도적 지원 악용한 북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해 9월 강릉 앞바다에 침투했던 북한잠수함이 1년이 지나 우리를 또다시 놀라게 하고 있다.

잠수함에서 미국구호단체가 북한에 보낸 통조림의 상표가 발견돼 대북 (對北) 식량지원이 군사용으로 전용될지 모른다던 우려가 뚜렷한 물증 (物證) 으로 처음 확인되고, 더구나 이를 1년 가까이 파악하지 못했던 우리 관계기관의 허술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북한잠수함에서 미국의 구호용 통조림이 사용된 사실은 지난 8월의 한.미합동군사훈련에 참가했던 미군 관계자들이 이 배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북한당국의 요청도 있었지만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북한의 굶주리는 참상을 근거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구호노력을 벌여 왔다.

우리의 경우 한 핏줄을 도와야 한다는 동포애에서 정부 차원의 대규모 식량지원은 물론 적십자사를 통한 북녘돕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지원받은 식량을 군량미로 사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대두돼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북한당국은 감시자의 증원이나 주민을 상대로 한 구호기관의 직접조사 요구 등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어물어물 넘겨 왔다.

북한정권이 군사력을 강화하며 모험주의노선을 택하고 있는 것이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지원식량을 이같은 폭력노선에 전용하고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단순한 군량도 아니고 남한을 교란할 목적의 침투작전에 이용했다는데 이르러서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정부로서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히 항의하고 미국과 일본을 비롯, 국제구호단체와 협력해 분배의 투명성이 확보되도록 북한의 다짐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잠수함에 대해 몇 차례 정밀조사를 했다면서도 지원식량 군사전용의 확실한 물증을 놓친 우리 관계기관의 안일과 무능도 문제다.

이같은 허술함이 북한의 야욕을 부추기는데 일조한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뼈아픈 반성과 대북태세 재점검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