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멍난 내신성적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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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 모중학교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고 시험문제지를 유출했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이 교사는 지난해부터 세차례 학교 등사실에서 7개 과목의 시험지를 빼내 학부모에게 건네주고 2백4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선의 노력과 공정한 경쟁을 가르치고 보여줘야 할 선생님이 시험부정에 앞장설줄 누가 알았겠는가.

세상에 아무리 부정과 비리가 판을 쳐도 지고 (至高) 한 가치로 빛날줄 알았던 사도 (師道) 마저 돈에 팔리다니 개탄치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교직자의 윤리의식을 한탄하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가 저지른 일은 입시제도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올해부터는 서울.부산.인천.광주등 4개 도시의 고교입학이 내신성적만으로 결정된다.

내신평가의 잣대인 시험문제가 유출됐다는 것은 입시부정이 벌어진 것과 다름없다.

그렇지 않아도 고교 내신입학제의 시행으로 학교측의 내신관리에 대해 학부모와 학생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호도가 높은 인문계고교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은 전체의 70%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내신입학제에서 학교시험성적은 곧 입학시험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지막 고사를 치르는 요즈음 서울의 일부 중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시험감독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시험지 유출사건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줄 충격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연합고사라는 종전의 공동관리식 입시가 학교 차원의 분산관리로 전환되자마자 구멍이 생기고, 그것도 학교 교사에 의해 저질러졌으니 학부모들의 불신과 불안은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율관리 능력이 이런 지경인데도 관리감독 의무를 진 교육청은 시험지 유출 파문에 대한 감사를 벌인 후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니 심각한 일이다.

우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시험문제 관리부터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치맛바람.학교교사에 의한 비밀과외등 내신입학제 시행으로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철저한 감시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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