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위기 극복하려면 ‘낙관론’을 현실화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지난 2주간에 걸쳐 여섯 분의 국책·민간 경제연구소장과 양당의 정책위원장을 만나보았다. 각각 1시간반 정도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전문은 joins.com)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번의 경제위기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며 상당 기간의 고통을 겪고 회복되긴 하겠지만 그 상처가 깊고 크리란 것. 또 하나는 우리의 경우도 그 고통과 상처에서 예외일 수는 없지만 내부 역량을 잘만 살리면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나름의 자신감이다.

물론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너무 낙관적이 아니냐는 비판의 말씀을 전해오신 분들도 있었다. 게다가 언론에 실명으로 발표되는 인터뷰에서 비관적 전망을 말하기엔 껄끄러운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낙관적 측면과 비관적 측면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현재의 동유럽 경제위기도 마찬가지다. 한쪽에선 이는 이미 지난해부터 예견됐던 것이고, 이와 직접 연관된 서유럽의 경제 규모로 볼 때 국가 공조를 통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다른 한쪽에선 동유럽 몇몇 나라는 국가 부도를 피할 수 없고, 서유럽 금융회사들의 레버리지와 동유럽 집중을 감안하면 줄도산과 세계적 파급이라는 파국적 사태를 맞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현재로선 낙관론이 80~90%로 우세하다고 보지만 결과적으로 10~20%의 비관론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복수의 시나리오가 있을 경우 보다 가능성이 큰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경제 운용이다.

이상하게도 경제 예측에서 낙관론은 대체로 인기가 없다. 낙관론이 현실화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음울한 예언에 귀가 쏠린다. 물론 근거 없는 낙관론은 위험하다. 현 경제위기도 결국 제어하지 못한 낙관론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나오는 무절제한 비관론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요즘 나오는 각종 한국 위기설은 단기외채나 은행예대율 같은 팩트에 대한 부주의한, 또는 왜곡된 해석이 근거로 제시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건 경고가 아니라 자칫 위해가 될 수 있다. 일부 외국 언론이나 신용평가회사에서 내놓는 비관론도 충고가 아니라 네거티브 공세의 느낌이 없지 않다.

낙관론은 단순히 앞날을 낙관한다는 게 아니다. 그런 낙관적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당연히 전제돼야 한다. 또 그 노력을 펼 수 있는 공간, 예컨대 재정이나 금융시스템, 기업 등의 건전성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 점에서 상대적으로 비관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게 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박태욱 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